예비 사이코패스, 병적 스토커… 치료 시급한 막장인생들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45분


아내의 유혹

김혜남 정신과 전문의가 본 ‘비정상 캐릭터’ 4명 분석

《“쟤, 정말 제정신이야?” “미쳤어, 미쳤어.” “정상이 아닌 거 같아.” 요즘 식당이나 어디서 TV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런 소리를 종종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성공을 위해 동생을 죽이려는 형(‘카인과 아벨’)이나 남편 동료와 바람피우는 아내(‘내조의 여왕’) 같은 극단적인 캐릭터가 사극도 아닌 현대극에 버젓이 나온다. 그 정점엔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있다. 지난해 11월 시작해 다음 달 1일 종영을 앞둔 이 작품은 ‘살면서 한 번을 만나기도 어려운 인물’이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명 나온다. 악역은 물론이고 주인공이나 착한 캐릭터도 평범한 사람 기준에선 고개가 저어진다. 그렇다면 이들 캐릭터가 실제 정신과 의사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지난해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인 김혜남 정신과 전문의(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장)에게 ‘아내의 유혹’ 대표적 비정상 캐릭터 4명의 분석을 의뢰했다. 김 소장은 “현실적으로 면담 인터뷰도 없이 병세를 판단하진 않는다”면서 “이 인물들 역시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캐릭터라는 점을 감안해 말과 행동 패턴으로 추정해봤다”고 말했다.》

■구은재

복수에 올인하는 과도한 자기애

주인공 구은재(장서희)는 이 드라마의 도덕적 잣대가 되는 인물. 결혼생활에 헌신적이었으나 배신한 남편과 연적에게 복수를 꿈꾼다. 흔히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큰 사고 뒤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보기 쉬우나 이 캐릭터는 애초부터 문제점이 컸다.

모든 일에 희생하는 순종성은 극단적인 자기애로 인해 형성된다. 억울함마저 참아내고 모든 걸 초월한 듯한 태도는 “난 너희와 다르다”는 도덕적 우월감이 바탕에 깔린 것. 일종의 인격장애에 해당하는 ‘마조히스틱 나르시시스틱 퍼스낼리티(masochistic Narcissistic Personality)’를 가졌다. 복수도 이런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을 죽이려 함으로써 생존의 마지막 방어기제를 건드려 ‘폭발’을 불러일으킨 것. 복수에 모든 걸 쏟아 붓는 비현실성도 과도한 자기애의 또 다른 표현이다.

→치료법: 2, 3년간 정신분석 치료가 필요하다. 심층면담을 통해 자기 문제를 깨닫는 게 우선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민소희

근친상간에 가까운 색적 망상

민소희(채영인)는 가지고 싶은 건 모두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의붓오빠 건우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못하고 집착을 드러낸다. 누구보다 ‘환자’임이 명확한 캐릭터다. 한마디로 ‘파라노이드 디스오더(paranoid disorder)’, 즉 편집증이다.

특히 의붓오빠와의 사랑에 매달리는 것은 근친상간에 가까운 ‘색적 망상(Sexual delusion)’ 증세다. 병적인 스토커로 발전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치료법: 항정신병 약물을 투여하는 게 좋겠다. 치료 시에는 환자에게 병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어느 쪽이건 치우치면 더 극단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신애리

충동조절 안돼 사회적으로 위험

신애리(김서형)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며 친구 남편을 빼앗는다. 범죄에 가까운 악행을 저지르고도 후회나 죄책감이 없다. 이 정도면 인격이나 양심의 영역인 ‘초자아(superego)’에 문제가 있다. 흔히 이를 초자아에 구멍이 뚫렸다는 뜻으로 ‘슈퍼에고 라쿠나(superego lacuna)’라고 부른다.

특히 모든 잘못을 타인의 탓으로 넘기는 ‘투사(projection)’의 성향이 크다. 이들은 충동조절이 안 돼 사회적으로도 위험하다. 즉, ‘안티 소셜 히스테리(Anti Social Hysterie)’의 징후가 강하게 느껴진다. 심하면 ‘사이코패스’로 발전할 수도 있다.

→치료법: 치료가 불가능해 보인다. 폐쇄병동에서 격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충동을 조절할 진정제를 장기간 투여해야 할 듯.

■정교빈

공격-수동성 뒤섞여 뒤틀린 정서

정교빈(변우민)은 가장 이해가 어려운 캐릭터. 아버지 앞에선 주눅이 들어 수동적이지만 애정을 위해선 천륜도 저버리는 인물이다. 이런 캐릭터는 드문 경우로 수동성과 공격성이 뒤섞인 ‘패시브 어그레시브 퍼스낼리티(Passive Aggressive Personality)’로 부를 수 있다.

이는 다혈질에 가부장적인 부와 자신에게 집착하는 모로 인해 인성 자체가 뒤틀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한 채 성인이 돼 애정, 특히 성적인 문제만 맞닥뜨리면 도덕적 기준도 없이 집착한다. 드라마 초기에 아내(구은재)를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는 행동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돈 주앙이나 카사노바도 어린 시절 부모에게 이와 비슷한 영향을 받았다.

→치료법: 답이 없다. 본인은 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간 약물치료와 면담치료를 병행해야 할 것 같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다른 드라마의 캐릭터는…

‘꽃보다…’ 금잔디 박해 희생자로 착각하는 중증

‘카인…’ 이선우 살인자적 분노 히틀러와 비슷

“‘꽃보다 남자’ 금잔디가 ‘아내의 유혹’ 구은재와 같은 정신병?”

김혜남 나누리병원 정신분석연구소장에 따르면 드라마 속 비정상은 단지 ‘아내의 유혹’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드라마가 ‘가상현실’이란 점을 감안해도 최근 드라마에는 정신병으로 의심되는 환자 캐릭터가 다수 있다.

김 소장은 뜻밖에도 최근 종영한 KBS2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 금잔디(구혜선)를 정상이 아닌 대표적 인물로 꼽았다. 서울YWCA 대학생 방송모니터회는 14일 발표한 드라마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금잔디를 “이처럼 수동적이고 비독립적이며, 안하무인이고 종속적인 캐릭터는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지만 정신의학적으로도 안쓰러운 캐릭터라는 것.

김 소장은 “‘아내의 유혹’ 구은재와 비슷하게 ‘마조히스틱 나르시시즘’이 가득한 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집단 폭행을 예견하면서도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자신을 ‘박해의 희생자’로 착각하는 중증”이라고 말했다.

MBC ‘내조의 여왕’에 나오는 ‘찌질남’(남자답지 못한 남성을 일컫는 신조어) 온달수(오지호)는 서울대 의대를 나왔음에도 우유부단과 의지박약의 끝을 보여주는 등 비정상적 행동을 한다. 이는 현실에 부닥쳐 자존심을 다친 온달수가 스스로 바보가 되는 ‘자아 체벌(self-punishment)’의 기제가 작동한 것이라 볼 수 있다.

SBS ‘카인과 아벨’의 형 이선우(신현준) 역시 현실적으로 희귀한 캐릭터. 그는 아버지가 병원을 동생에게 물려주려고 하자 동생을 죽이려 들고 아버지를 위험에 빠뜨린다. 이처럼 타인을 향한 극단적인 ‘살인자적 분노(murderer's rage)’는 히틀러에게나 볼 수 있는 성정이다.

김 소장은 “최근 일련의 드라마 캐릭터를 종합하면 문제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피해자증후군’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면서 “아무리 가상이라지만 무의식적으로 이런 사고가 퍼지는 것은 결국 시청자들에게 유사한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화보]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 배우 장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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