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의 명암…‘열정 혹은 집착’

  • 입력 2007년 2월 19일 1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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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오타쿠로 통하는 마니아 문화는 4조 원 이상의 엄청난 경제규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시키고 심지어 자살과 왕따로 이어지는 문제점도 뒤따른다.

KBS ‘수요기획’은 21일 방송되는 ‘지독한 열정, 마니아를 말한다’ 편에서 마니아들의 세계를 조명한다.

▲“마니아의 지갑 규모는 4조 원”

국내에는 ‘폐인’임을 자처하는 마니아층이 인기드라마나 연예인을 통해 형성된다. 드라마 ‘다모’의 ‘다모폐인’을 비롯해 ‘부활폐인’, ‘주몽폐인’, ‘하이킥폐인’ 등 드라마를 아끼는 팬들이 자발적으로 활동을 해왔다. 여기에 황진이 화장품, 주몽 복분자술과 쌀 등 드라마관련 상품이 쏟아져 마니아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이 정도는 약과다. 마니아들의 천국인 일본은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는 물론 프라모델, 카메라 등 작은 물건을 비롯해 헬리콥터나 기차 등을 보관조차 버거운 것들을 직접 소유한 ‘폐인’도 있다. NHK에서 마니아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황금시간대에 편성할 정도다.

이러한 문화는 애니메이션에서 비롯됐다는 게 다수설이다. 인기 애니메이션에서 파생된 것들에 빠져 있는 마니아들을 ‘오타쿠’라 일컫는다. 오타쿠는 영화, 애니메이션의 등장 인물 축소 인형인 피규어(figure)를 구입하는 데 ‘거침없이’ 1억 원을 내기도 한다.

일본 경제연구소인 ‘노무라연구소’는 “오타쿠들의 시장규모가 4조 원에 육박한다”며 경제적인 긍정성에 주목했다.

▲“열정의 이면에는 왕따, 자살?”

문제는 무언가에 몰입한 젊은이들이 삶(현실)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고, 좌절감을 맛볼 경우 자살이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본의 자살자 수는 연간 3만 명 이상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특히 히키코모리는 무려 120만 이상, 일본 전체 인구의 1%에 이른다. 오타쿠 층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인 셈이다.

일본의 정신분석학자 사이토 다마키 박사는 “그들(히키코모리)은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소유하고 싶은지 모르는 것”이라면서 “오타쿠의 최대 무기는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것이 뭔지를 안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무언가를 미치도록 좋아하고 끈질기게 수집하는 사람들, 아무도 하지 않고 무언가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의 ‘지독한’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열정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

마니아들은 한결같이 “열정이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입을 모은다.

제작진이 만난 농구를 너무 좋아하는 한 청년은 자신이 죽을 때 농구공도 함께 묻어달라고 말했다. 다른 청년은 빌딩 사이를 맨몸으로 뛰어다니는 것이 자신에겐 즐거운 일이라며 웃는다. 가수 남인수의 옛 레코드판을 구하러 오늘도 레코드판 가게를 찾은 택시 운전기사에게 음악은 살아가는 이유다. 서울 홍대 클럽에서 만난 한 소녀는 브레이크 댄스가 삶의 모든 것이라고 전했다.

제작진은 “다양한 대중문화와 비주류 문화 가운데, 각기 다른 어떤 것들에 빠져들며 사람들은 행복을 느낀다. 몰아지경(沒我之境)의 경험, 그 행복한 순간의 기억은 일상의 위안이 된다”고 진단했다.

정기철 스포츠동아 기자 tom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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