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서른, 금지된 사랑에 빠지다… 29일 개봉 ‘사랑니’

  • 입력 2005년 9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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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영화인
사진 제공 영화인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이 6년 만에 두 번째 장편 ‘사랑니’를 내놨다. 추잡하지만 절절한 사랑의 냄새로 가득했던 ‘해피엔드’를 만든 정 감독, 그가 이번엔 어떤 ‘맛’으로 사랑을 요리했을까.

첫 번째, 요리의 재료(설정). 기가 막힐 만큼 정교하다. 치밀하며 아이디어가 넘친다.

먼저 주인공의 나이가 그렇다. 서른 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 현실(동거남)에 만족할 수도, 소녀같이 첫사랑을 잊지 못할 수도, 아니면 징그럽게도 새파란 제자와 일을 치를 수도 있는 나이. 절묘하게도 서른 살 조인영 역할을 맡은 배우 김정은도 1976년 생으로 올해 서른.

등장인물의 이름도 마찬가지. 주인공의 첫사랑과 주인공이 금지된 사랑에 빠진 제자의 이름(이석)이 똑같다. 또한 제자를 사랑하는 여고생의 이름(조인영)은 주인공과 똑같다. 주인공은 제자를 ‘첫사랑과 닮았다’고 믿었지만, 정작 몇 년 만에 재회한 첫사랑의 얼굴은 제자와 영판 다르다. 또 여고생 조인영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학생과 똑같이 생긴 쌍둥이 형제를 사랑하려 하지만 결국 둘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똑같은 이름의 두 남자가 혼란을 일으키고, 제자 이석을 중심으로 똑같은 이름의 두 여자가 줄다리기를 하며, 여고생 조인영을 중심으로 똑같은 얼굴의 쌍둥이 형제가 착각을 일으킨다.

기억과 실체는 같은 걸까. 외형과 마음은 다르지 않은 걸까. 같은 듯한데 다르고 다른 듯한데 같은 삶의 아이러니. 게다가 주인공 인영은 막판에 첫사랑과 동거남과 제자를 한자리에서 모두 만난다. 거미줄처럼 일견 어지럽지만 어딘가에 필히 질서가 숨어있는 여자의 사랑. 바로 이 순간, 주인공의 사랑니가 아파온다. 이 절묘한 사랑의 알레고리여!

두 번째, 요리의 방법(연출). 감독은 이렇듯 특별한 재료들을 가지고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연애담인 양 풀어낸다. ‘학원 강사와 미성년 제자의 사랑’이란 특별한 이야기가 가진 특수성을 증발시켜버림으로써 넌지시 서른 살 여자의 ‘사랑학 개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유일하고도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 말이다.

세 번째, 요리의 맛(결과). 글쎄. 재료도 싱싱하고 레시피(조리법)도 창의적인데, 정작 ‘맛’이 안 느껴지니. “나 걔(제자)랑 자고 싶어” “포경 수술 안 한 어른 거 처음 봤어. 예뻐”와 같은 눈이 번쩍 뜨이는 대사들을 주인공은(그것도 김정은이) 거리낌 없이 뱉어내지만, 관객의 마음속에 따스하게 침투할 만큼의 감정적 밀도는 형성되지 않는다. 욕망을 말하고 욕망을 행동하지만 정작 그 욕망이 느껴지지 않는…. 꿈틀거리는 사랑을 탈수시켜 마치 바둑 복기(復棋)하듯 찬찬히 소화하겠다는 감독의 의도가 가질 수밖에 없는 그림자 아닐까.

김정은은 나쁘지 않지만 좋지도 않다. 그녀가 얼굴의 미세한 감정 표현을 조금씩 상실해 가는 ‘얼음공주’가 되어 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29일 개봉.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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