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여성 버디 영화, 왜 한국선 기 못펴나

  • 입력 2002년 9월 11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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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도 눈물도 없이

피도 눈물도 없이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실제로 베컴은 안 나오는 영화 ‘슈팅 라이크 베컴’은 ‘언니들이여, 베컴처럼 차라!’고 외치는 귀엽고 유쾌한 소녀들의 축구 이야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양배추만 봐도 다리가 번쩍번쩍 올라가는, 축구 선수를 꿈꾸는 두 소녀다.

반응이 좋아 흥행이 기대됐던 작품이지만 막상 개봉되고 보니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이유가 뭘까. 여러 분석 중에서 “여자 두 명 나오는 영화가 된 적이 거의 없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다. 하긴 할리우드에서 아무리 성공을 해도 한국만 오면 기를 못펴는 영화가 바로 ‘여성 버디 무비(Buddy Movie)’ 장르다. 한국 영화도 여자 둘이 나오면 이상하게 흥행이 부진했다.

세계가 열광해도 한국엔 안 통했다?

남편에게 시달리는 평범한 주부 델마와 독신생활을 즐기는 웨이트리스 루이스가 일상의 탈출을 위해 여행을 떠나 사고와 역경 끝에 애리조나 그랜드 캐니언에 도착, 벼랑을 향해 엑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 달리는 이야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1991년).

지나 데이비스와 수전 서랜던이 동시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진기록에 6개 부문 노미네이트, 각본상 수상의 영광도 안았다. ‘현실적인 페미니즘 영화의 진수’라는 극찬과 ‘파시즘화된 페미니즘 영화’라는 비판을 받은 여성 버디 무비의 원조격이지만 개봉 당시 한국에서는 화제에 오른 데 비해 성과는 미미했다.

결혼을 앞둔 엘리는 애인이 바람을 피우자 그와 결별을 선언하고 아파트를 같이 쓰게 될 룸메이트 헤디를 만난다. 급속도로 가까워진 두 여자, 그러나 엘리가 샘과 다시 화해하자 헤디는 그녀를 빼앗길까봐 샘을 살해한다. 우정과 애정 사이를 넘나드는 영화 ‘위험한 독신녀’다. 이 역시 평가에 비해 크게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다.

바운드

본격 레스비언 영화로 당시로서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도했던 영화 ‘바운드’는 제니퍼 틸리, 지나 거손이라는 두 여배우의 독특한 매력과 워쇼스키 형제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 이 영화는 뒤늦게 비디오로 출시된 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좋은 영화로 남아 마니아 팬도 있지만 개봉 당시에는 흥행이 잘 안 됐다.

마초들의 세계에서 얻어맞고 터지고 무시당하지만 결국엔 여자들만의 피투성이 우정을 확인하고 돈가방을 차지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 ‘피도 눈물도 없이’도 마찬가지. 한국영화계의 신선한 젊은 피 유승완 감독에 전도연, 이혜영이라는 행운의 카드를 가지고 평단의 지지를 받았지만, 이 영화의 터프한 ‘두 여자’들 역시 흥행의 벽을 깨지는 못했다.

‘리셀웨폰’ 시리즈, ‘맨 인 블랙’ 시리즈, ‘투캅스’ 시리즈 등 두 명의 남자가 짝을 이뤘던 시리즈가 전세계 관객을 상대로 이룬 성과에 비해 여성 버디 무비가 넘지 못했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

여자는 사랑만 받으라고?

묘하게도 흥행 부진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여성 버디 무비가 걸어온 길은 그래서 고독하고도 험난했다. 여자 둘이서 차지하고 있는 포스터는 아무리 오락적인 향기가 물씬해도 뭔가 ‘그들만의’ 목소리를 높일 것 같다는 선입견 때문에 호감도는 높았어도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왠지 ‘페미니즘 영화’나 ‘여성운동하는 영화’라는 이미지를 주면서 ‘재미없는 영화’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아직도 여자 둘만 포스터에 나오는 일은 위험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여자들의 달라진 캐릭터들이 기획, 제작되어 영화 속에 다양하게 표현되고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여전히 포스터 속에 여자들의 맞은편엔 늘 남자가 있다. 엽기적인 터프 걸의 대표선수가 된 전지현이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로 우뚝 섰지만 차태현의 낮은 포복이 큰 몫을 감당했던 것처럼.

여자 두 명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선입견을 깰 수는 없을까. 델마와 루이스처럼 마초가 되지 않고도 단호하게 전진하는 두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를 당분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흥행이 되려면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는 할리우드의 철저한 법칙을 깨뜨리고 성공했던 ‘델마와 루이스’처럼 우리에게도 씩씩한 모델 케이스의 여성 버디 무비가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정승혜 씨네월드 제작이사 amsaj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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