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임권택감독 명예박사 답사 전문

  • 입력 2002년 7월 3일 17시 28분


저에게 이 영광된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주신 가톨릭 대학교와 오창선 총장님,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제도권의 교육을 받지못하고 거의 무학이었던 저는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을 메꾸어 가는데 많은 고충과 불편, 그리고 열등감 속에서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이던 시대에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해방을 맞은 우리 민족은 이내 좌우익 대결로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습니다. 그 때 우리 친인척은 좌익 쪽에 가담했었습니다.

뒤이어 한국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동족끼리의 싸움은 한반도를 초토화시켰으며 수백만명의 희생자를 냈습니다. 이념의 구현을 위해서 사람을 희생의 발판으로 삼았던 남과 북은 아무 것도 얻은 것 없이 종전되었습니다.

한국 전쟁은 저의 삶 속에 오랫동안 각인된 흉터로 자리잡았고 여태도 소화불량증에 시달려야하는 비극적인 체험이었습니다. 그 이래 저는 이 세상은 오직 사람을 존중하는 세상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되었고, 그런 소신과 믿음을 키워오면서 제 영화 속에 인본(人本)을 담아내고자 긴 시간 노력해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998년 제41회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 평생공로상을 받는 자리에서 영화를 통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소신을 밝힌 바 있습니다.

"싫든 좋든 더불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오늘의 지구촌을 황폐하고 거친 꽃밭에 비유해봅니다. 그런 지구촌을 아름다운 꽃밭으로 가꾸는데 영화라는 매체도 한 몫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시아의 극동,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영화 감독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곳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개성을 필름에 담아서 세계라는 큰 꽃밭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작은 꽃으로서 작은 부분이나마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

제게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하신 가톨릭대학교와 관계자 여러분께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오명철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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