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왕건의 '역성혁명', 준비된 쿠데타였을까?

  • 입력 2001년 5월 17일 18시 45분


왕건의 ‘역성 혁명’은 ‘준비된 쿠데타’였을까.

19일 방영되는 KBS 대하사극 <태조 왕건>(밤10시)에서 왕건이 마침내 쿠데타를 일으키고 20일에는 궁예가 최후를 맞는다.

지난주의 마지막 장면은 ‘혁명 전야’에 궁예와 독대한 왕건이 “형님, 이 아우를 용서하시오소서”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일편단심 궁예에게 충성을 다짐해 온 왕건의 마음이 마침내 돌아섰음을 암시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왕건은 막상 ‘D데이’ 저녁까지도 마음을 다잡지 못한다. 부하 장수들이 집으로 찾아와 ‘일’을 도모하라고 간청하지만 왕건은 “한번 주인을 배반하기 시작하면 뒷 세상에서 이를 구실삼아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며 거절한다. 그러자 부인 유씨가 갑옷을 들고 나타나 부하들과 함께 간청하자 왕건은 ‘하늘의 뜻과 백성의 여망이라면 어쩔 수 없다’며 이날 밤 혁명을 일으킨다.

과연 왕건은 이처럼 혁명 당일에 전격적으로 마음을 바꿔 ‘형님 폐하’에게 반기를 들었을까.

‘고려사’등 정사(正史)에서는 왕건이 마지막 순간까지 혁명을 거부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왕건의 혁명이 ‘치밀하게 준비된 쿠데타’라고 본다.

이재범 경기대 교수는 “‘혁명’을 일으킨 왕건의 덕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역사서에서는 왕건이 계속 사양했던 것으로 묘사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역사기록의 ‘행간’을 보면 왕건이 사전에 혁명을 준비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혁명 정국’ 이 이어지지 않고 왕건이 집권하자마자 ‘내각’을 출범시키고 집권 며칠만에 무려 100명의 관리를 임명한 것은 사전준비의 방증이라는 것.

또 전란 중인데도 △세법 개정 △노역 및 군역 의무 3년간 면제 △노비 대거 방면 등 파격적인 정책을 실시한 것도 사전준비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왕건이 서른살때 ‘9층 금탑에 오르는 꿈을 꿨다’는 고려사 기록도 의미심장하다. ‘금탑’은 ‘왕권’을, ‘9층’은 ‘천하’를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42세에 왕위에 오른 왕건이 10여년 전부터 왕위를 노렸음을 암시하는 구절이라는 설명이다.

또 고구려의 후예인 왕건과 그 호족들이 고구려어로 ‘장군’을 뜻하는 ‘대모달’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기록(‘고려사’중 ‘박지윤열전’)도 왕건의 ‘고려 건국’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연출자인 김종선 PD는 “왕건이 주인공인 만큼 ‘왕권’을 노려 배신하는 인물보다는 인간적인 고뇌 끝에 ‘대의’를 위해 결단을 내리는 것으로 그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고려사를 따랐다”고 밝혔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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