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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6월 19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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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30%대의 시청률로 인기를 끌고 있는 MBC의 미니시리즈 ‘이브의 모든 것’은 직업묘사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뉴스 앵커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여자 아나운서들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 ‘이브…’는 방송국 내부 얘기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제작진이 사실적 묘사에 충실하려 한다면 얼마든지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제작과정은 전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제작진은 ‘보도국 눈치보랴, 아나운서국 눈치보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이브…’는 당초 악역인 허영미(김소연 분)가 계략과 술수로 ‘뉴스의 꽃’인 9시뉴스 앵커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극중 긴장이 최고조에 이를 예정이었다. 드라마 흐름상 허영미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공신력 있는 9시뉴스의 앵커가 호락호락한 자리라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는 내부 지적에 따라 허영미는 결국 9시 뉴스를 맡지 못한 채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 드라마는 또 기획단계에서 아나운서와 보도국의 ‘미묘한’ 관계를 고려해 주인공들의 직업설정이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당초 기획할 때는 진선미(채림 분)는 기자로, 허영미는 아나운서로 입사해 뉴스앵커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것으로 돼 있었으나 보도국과 아나운서국 간의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아나운서국의 주장에 따라 모두 아나운서로 바뀐 것.
현재 MBC 뉴스데스크를 공동 진행하는 김은혜앵커는 보도국소속 기자. 그동안 뉴스데스크는 아나운서출신이 여성앵커를 맡아왔으나 김기자가 앵커로 발탁됐을 때 아나운서국에서는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속을 끓였다는 후문.
연출자인 이진석PD와 입사동기라는 인연 때문에 드라마중 남자앵커로 ‘우정출연’ 중인 아나운서국 성경환부장은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끊없이 자기계발과 공부를 하는 진짜 아나운서의 모습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아나운서들이 연필을 입에 물고 발음훈련을 하는 극중 장면이 바로 실제와 거리가 먼 대표적인 사례라는 게 성부장의 지적이다.
결국 드라마의 직업묘사는 상당부분 허구라는 것을 알고 보는 안목은 시청자의 몫인 셈이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