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요네즈」 김혜자씨『주책바가지 연기 놀랄걸』

  • 입력 1999년 2월 4일 19시 40분


또 어머니다. 탤런트 김혜자(58). 국내에서 그만큼 어머니 역을 많이 맡은 배우도 없을 게다.

그런데 이번엔 파격이다. 13일 개봉할 영화 ‘마요네즈’에서 김혜자는 ‘가장 한국적인 어머니상’으로 굳어지다시피 한 이미지를 뒤엎고 ‘가장 어머니답지 않은 어머니’를 연기한다.

딸(최진실 분)보다 철딱서니없고 물질욕이 강하고 주책맞은 여자, 오죽하면 딸한테서 “내겐 엄마가 없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을까. 19년째 출연중인 MBC‘전원일기’에서 깨지지 않는 모성의 신화를 대표해온 그가 82년 ‘만추’이후 17년만에 출연하는 영화로 모성을 전복하는 역할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마요네즈’에서는 희생정신보다 사랑에 목이 마른 ‘여자’로서의 면모가 부각됐지만 어머니의 본질은 어떻게 표현해도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자기 어머니를 한 번 생각해보면, 모든 어머니들에게 ‘전원일기’의 엄마와 ‘마요네즈’의 엄마, 그 두 성격이 다 들어앉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는 “나더러 제목을 붙이라면 ‘인생’이라고 하고 싶다”면서 “즐겁고 슬픈 느낌, ‘그래, 인생이 저런 거지’하는 느낌을 관객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요즘 김혜자는 몸이 아프다. 지난해 3월 ‘마요네즈’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신들린 사람처럼 “그 여자가 내 안에 들어와버려 쫓아낼 수가 없었고”, 촬영을 끝낸 요즘은 신내림굿을 끝낸 무당이 그렇듯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린다. 그래서일까. 그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인 ‘마요네즈’에서 김혜자의 연기에는 좀 연극적이라고 느껴지는 대목에서조차 관객을 압도하는 귀기(鬼氣)가 서려있다.

김혜자가 얼마나 자신의 연기에 철저한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한 가지. 세트에 조명을 설치하던 1시간동안 그가 구석에 누워 있길래 제작진은 ‘노인네가 피곤한가보다’하고 내버려뒀다. 잠시후 부시시 일어난 김혜자가 옆사람한테 물었다. “여기 좀 봐봐, 내 얼굴에 자국 났어?”

소파에 모로 누워 자다 일어나는 한 장면을 위해 얼굴에 눌린 자국을 만들려고 일부러 누워 있었던 것.

‘마요네즈’는 지난해 7월 남편과 사별한 그에게 개인적으로도 각별한 영화다.

“남편한테도 얘기를 해줬는데 ‘참 재밌는 엄마네’그러더라구요…. ‘마요네즈’가 없었다면 내가 많이 상했을 텐데, 정신을 빼앗겨서 남편 생각을 좀 덜 할 수 있었어요.”

연기생활이 올해로 37년째. 연기는 그에게 직업이 아니라 “살아가게 하는 힘”이지만 요즘은 “외로워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절감한다.

“얼마전에 늙은 말론 브란도가 심심해서 출연한 것같은 영화를 봤는데, 원 세상에, 늙어서 수치심도 없어지고, 왜 저러나 생각하다가 내가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난 죽어도 심심해서 연기하긴 싫어요. 외롭고 고독해도 견뎌내는 연습을 해야될 것같아요….”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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