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임권택감독이 ‘춘향뎐(춘향전)’을 만든다. 9일까지 춘향과 몽룡을 공개모집해 배우를 뽑고 일년간의 작업을 거쳐 빠르면 99년말, 늦으면 2000년의 설날께 선보일 예정이다. 임감독의 97번째 영화, ‘춘향전’으로서는 13번째 영화화다. 새 밀레니엄을 꿰뚫어봐도 시원치 않을 이 세기말, 그는 왜 켸켸묵은 고전에 손을 대는 것일까.
“왜 춘향전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생명력이 있는지, 그걸 영화로 밝혀보고 싶기 때문이지요.”
한 인간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을 걸고 대들 수 있는 장렬한 용기,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있는지를 묻고 싶다는 것이다. 춘향전이 그를 ‘미치게’ 한 것은 93년 ‘서편제’제작을 준비할 때였다. 조상현명창의 완창을 처음 듣고 그 소름끼치는 소리의 감동을 그림으로 받쳐 극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 엄청난 일같아 엄두를 못내고 “한 10년후에나 해보자”고 미뤄두었다.
“그런데 자꾸 춘향전이 내 속에서 밀고 올라오는 거예요. 요즘 우리 영화가 젊은사람만 상대하느라고 폭이 얇아지는데, 내 나이에 그 얇은 관객층에다 대고 영화를 할 것도 아니고… 2, 3년간 가위눌리다가 제작자(태흥영화사 이태원사장)에게 그랬지요. 잘되면 큰 걸 하는 것이고 안되면 큰 걸 버려놓는 거라고, 덤벼볼 용기가 있느냐고… 그랬더니 두말도 않고 승낙하더군요.”
“이렇게 미치기가 쉽지 않은데 정말 좋은 소재를 만났다”고 임감독은 흥분해있다. 다시 밀레니엄으로 돌아가보자. 지구촌시대가 온다는데 왜 극동의 고전인가. 말씨 어눌하기로 소문난 임감독이 띄엄띄엄,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리 새 밀레니엄과 지구촌시대가 온대도 동서양의 벽은 여전히 존재한다. 서양인은 ‘때려 죽인대도’ 이해하지 못하는 동양의 세계가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온 한국의 아름다움을 춘향전에 담아 지구촌이라는 큰 꽃밭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보탬이 된다면 그것으로 됐다.”
〈김순덕기자〉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