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앵커,개표방송 「큐 사인」에 社運 건다

  • 입력 1997년 12월 16일 20시 38분


째깍째깍…. 18일 오후 6시. 마침내 대권(大權)을 실은 「운명의 시계」가 멈췄다. 이어 PD의 숨넘어갈듯한 「큐사인」이 떨어지자 카메라의 포커스가 앵커를 향한다. 『유권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선택은 이제 끝났습니다』 선거의 종료를 알리는 메인 앵커의 오프닝 멘트가 일제히 포문을 연다. 선거는 끝났다. 그러나 개표 방송을 둘러싼 방송사의 「개표 전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유근찬(KBS·48) 이인용(MBC·40) 전용학앵커(SBS·45). TV 3사가 사세를 걸고 총력전을 기울이는 개표 방송의 간판스타이자 승부사들이다. 이미 각사 「메인 뉴스」에 「매인 인생」인 이들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당선자를 예측하느냐가 개표 방송의 승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자신만의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물론 결과는 예측불허, 열어봐야 알 터이다. 선거방송 전문가들은 방송사들이 6시 시보와 함께 각종 여론조사와 투표자 전화조사를 토대로 한 예상 득표율을 발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1,2위의 격차가 오차한계 내에 있는 박빙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발표 시점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속보와 정확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는 상황은 메인 앵커들의 「긴장지수」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92년 대통령선거 등 네차례나 개표방송을 진행, 유일한 유경험자인 유근찬앵커는 『평상시에도 노을이 지면 맥박이 빨라지기 시작한다』고 「직업병」을 호소하며 『후보들이 시소 게임이라도 벌이면 스튜디오는 초비상사태』라고 말했다. 개표 방송은 숙련된 인력과 가상스튜디오 등 첨단기술이 결합된 「종합예술」이자 정해진 각본이 없는, 가장 흥미진진한 「드라마 아닌 드라마」다. 전용학앵커는 『앵커 한사람의 힘으로 좋은 방송을 만들 수는 없다』면서 『투개표 현장 요원부터 마지막 릴레이주자인 앵커까지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당일 개표 방송에 앞서 가상스튜디오와 선거방송 관련 소프트웨어의 활용 등을 위해 서너차례 리허설을 갖는다. 당일 낮에도 오후 2시부터 비상대기 상태에 들어간다. 다음날 정오경까지 계속되는 18시간의 마라톤방송, 3백3개의 개표소 등 현장과 스튜디오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대비, 복잡한 선거관련 소프트웨어 익히기와 득표율 숫자 읽기 등을 넘어야 할 산으로 꼽는다. 미리 작성한 대본과 큐시트 속에 진행되는 50분 안팎의 정규 뉴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1백만 단위의 숫자를 틀리는 것은 애교에 가깝고 내용과 다른 화면이 나오는 엉뚱한 일도 벌어진다. 이때 앵커들은 사고처리반장 역할을 해야한다. 10∼20초정도 수시로 발생하는 비상사태를 애드립으로 소화하는게 그들 몫이다. 방송가에서 앵커를 방송기자의 「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앵커들은 『뉴스라는 감옥에 갇힌 꽃』이라고 대꾸한다. 이인용앵커는 『감기에 걸리는 것도 자유에 속한다』고 말한다. 바이오 리듬과 개인적 스케줄이 뉴스를 위해 조정되고 목소리가 잠기거나 얼굴에 외상이라도 생기면 프로페셔널이라 할 수 없다. 결전의 날을 하루 앞두고 필승을 다짐하는 3사의 메인 앵커들, 대통령 후보들의 흉중 못지않게 두근거린다. 〈김갑식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