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연체율 10년만에 최고… 파산신청 법인도 코로나 때의 2배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4월 18일 01시 40분


내수 침체에 고유가-고환율 유탄
영세 자영업자 상환 부담 커져
전쟁 장기화로 연체율 상승 우려
구윤철 “추경 신속집행, 경기 방어”

3년 전 서울 마포구에서 전통주점을 오픈한 최모 씨(38)는 최근 폐업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7∼9월)부터 손님이 부쩍 줄어든 탓에 매달 사업자 대출의 원리금을 갚는 것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최 씨는 “장사 초기 때보다 하루 평균 매출이 30%쯤 줄어 대출 이자를 못 갚는 달이 계속 생기고 있다”며 “사업을 접는 동시에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주변을 수소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생산적 금융 기조에 맞춰 은행들이 기업대출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정작 중소법인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상승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내수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올 들어선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고환율 국면이 취약계층의 채무상환 부담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취약계층 및 업종의 부실이 금융 안정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중소법인 연체율 1% 돌파… 두 달 새 372곳 파산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2월 말 기준 국내 은행들의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된 비율)은 한 달 전보다 0.06%포인트 오른 0.62%로 집계됐다. 지난해 5월(0.64%) 이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달 기준으로는 2016년(0.7%)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특히 기업대출에서 연체율 상승이 두드러졌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0.76%로 전월 대비 0.09%포인트 오르면서 가계대출 연체율의 상승 폭(0.03%포인트)을 크게 웃돌았다. 그중에서도 중소법인 연체율이 1.02%로 한 달 새 0.13%포인트 치솟았다.

중소법인의 부채 부담은 정부가 운영하는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 신청 건수로도 확인된다. 지난달 말 기준 새출발기금 누적 신청자는 19만856명, 신청액은 11조3398억 원으로 나타났다. 신청액은 지난해 말(9조8089억 원) 이후 석 달 만에 1조 5000억 원가량 늘었다.

연체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채 폐업에 이르는 상황도 속출하고 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1∼2월 파산을 신청한 법인은 372건으로 2020년(151건), 2021년(129건), 2022년(135건)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정부의 집합금지 조치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전례없는 피해를 입은 때보다도 파산 건수가 훨씬 많아졌다는 얘기다.

한국은행도 지난달 26일 발간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서 취약계층의 연체 부담이 높은 점을 경제 활성화의 부담 요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김정호 한국은행 안정총괄팀장은 “앞으로 시장금리 여건의 변화에 따라 (취약계층의) 연체율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동 전쟁 장기화로 경제 하방 위험 커져”

문제는 중동 전쟁의 장기화로 한국 경제가 물가 불안, 소비심리 위축 등 이른바 ‘하방 리스크’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17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지정학적 위험이 확대돼 경기 하방 위험이 증대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경기 하방 위험 증대가 우려된다”는 표현을 썼는데, 한 달 사이 경고의 수위가 한층 높아진 셈이다.

경제 지표만 살펴봐도 실물 경제가 타격을 입은 점이 감지된다.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2% 올라 2월(2.0%)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한 달 새 석유류 물가가 9.9% 치솟은 결과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107.0으로 전월보다 5.1포인트 하락했다. 올해 1∼2월 반도체 수출 호조에 상승세를 보였던 소비심리가 불과 3개월 만에 꺾인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취약 자영업자 연체율이 2월까지 높아졌는데, 3월 초부터 본격화된 중동 전쟁 여파로 인해 당분간 연체율 상승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신속히 집행해 경기를 방어하겠다는 입장이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이날 화상으로 비상경제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추경을 조속히 집행해 국민 부담을 경감할 것”이라며 “27일부터 지급될 고유가 피해지원금 등 신속집행관리 대상 10조5000억 원은 상반기(1∼6월) 내 85% 이상 집행될 수 있도록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중동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유동성 문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추경을 통해 25조6000억 원으로 확대된 정책금융기관 금융 지원 프로그램과 53조 원 규모의 금융권 지원 방안을 운영할 방침이다. 또 기업들의 원활한 자금 조달을 돕기 위해 채권시장안정펀드, 회사채·기업어음 매입 프로그램 등의 대책도 내놨다. 이억원 위원장은“중동발(發) 위험 상황에서도 여러 불안 요인에 철저히 대비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금융권, 산업계가 함께 긴밀한 협업 체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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