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이 불러온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은 공업제품을 넘어 서비스와 식품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생산비와 운송비 상승이 누적되면서 소비자 물가 전반에 부담을 키우는 모습이다. 유류할증료 인상, 연쇄적인 먹거리 가격 상승 등은 아직 물가에 반영되지 않은 데다, 국제유가 상승 영향이 3개월 이후 장기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물가 상승세가 갈수록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유가 상승, 물가 전반에 부담 키워
5일 국가데이터처의 소비자 물가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서비스 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상승했다. 지난해 3분기 1.9%에서 4분기 2.3%로 높아진 데 이어 올해 들어 상승 폭이 더 커졌다. 서비스 물가에는 외식비, 항공료, 학원비 등 서비스 품목이 반영된다.
그나마 항공료 상승은 아직 물가에 반영되지 않았다. 당장 이달부터 미국 등 장거리 노선에서 유류 할증료만 왕복 60만 원 넘게 내야 하는 만큼, 이달부터 서비스 물가를 끌어 올리는 요인이 된다.
에너지발 서비스 가격 상승은 먹거리에도 영향을 끼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는 올 2분기 국제 곡물(밀·옥수수·콩·쌀) 선물 가격지수는 전 분기보다 6.4%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곡물 생산에 필수적인 비료 공급이 차질이 생기는 데다, 곡물 수출입에 들어가는 물류비용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지난달 세계 식량가격지수(128.5)는 원유 가격 상승 등으로 전월 대비 2.4% 상승해 지난해 9월(128.6) 이후 가장 높았다. 비료와 비료 원료 가격은 중동 전쟁 이후 급등하고 있다. 지난달 중동 지역 요소 수출 가격은 t당 670달러로 전월 대비 38.1%,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2.3% 올랐다. 막시모 로레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쟁이 40일 넘게 이어지고 원자재 비용이 상승하면 농부들은 재배 면적을 줄이거나 비료를 덜 쓰는 작물로 전환할 것”이라며 “내년까지 식량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쌀이 진열돼 있다. 2026.4.2 뉴스1국내 식탁 물가 오름세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육계(고기용 닭고기) 산지 가격은 ㎏당 2550원으로 전년 대비 30.6% 상승했다. 수입에 의존하는 사룟값 부담이 늘어난 데다,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사육 마릿수마저 감소해서다. 농촌경제연구원은 4월 육계 산지 가격이 전년 대비 상승한 2700원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 전쟁 종료돼도 물가 상승 압력은 지속
물가 상승 압력은 중동 전쟁 종료 시점과 관계없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한국은 원유 중동 의존도가 높아 위기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는 만큼 에너지 수입 비용 증가가 물가와 경상수지에 상당한 압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동 전쟁이 조기에 종료된다고 해도 수입 에너지 비용이 단박에 떨어지긴 어렵다. 에너지 가격이 생산자 물가를 거쳐 소비자들이 입고 쓰고 먹는 사실상 모든 품목의 물가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의 소비자 물가가 애초 전망보다 많이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말 주요 IB 8곳 중 뱅크오브아메리카(2.1%)와 UBS(2.0%)를 제외한 IB 6곳은 모두 올해 한국의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0% 중반대로 높였다. JP모건은 전망치를 2.6%로 제시하며 한 달 전(1.7%)보다 0.9%포인트 높이기도 했다. JP모건은 “중동 상황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5∼9월에 3%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그 이후의 전망은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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