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선재㈜
작은 공장서 39년간 철선 한 우물… 2018년 피막 표면처리 기술 특허
자동차-건설 등 다품종 소량생산… 고객 요구 발빠른 대응으로 신뢰
‘비인계 피막’ 스마트공장 추진… 조선-철강분야로 사업영역 확장
대우선재는 자동차 부품용 냉간압조(CHQ) 철선부터 전자제품용 정밀 철선, 건축용 철선, 철근 결속용 철선까지 산업 현장별로 요구되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사진은 대우선재 신선동.
사진은 대우선재 열처리동.
사진은 대우선재 원자재 보관.
전기차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철선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 내연기관 시대를 지탱하던 볼트와 파스너(분리돼 있는 것을 잠그는 데 쓰는 기구) 수요가 구조적으로 줄어들었고 건설 현장에서 쓰이던 철근 결속용 철선마저 중국산 완제품에 자리를 내줬다. 1987년 서울 성수동 작은 공장에서 시작해 39년간 철선 한 우물을 판 대우선재㈜도 변곡점을 맞았다.
“이제는 단순히 경기가 나쁘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신현구 대우선재 회장의 진단은 명확했다. 산업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 하지만 충북 충주 공장은 여전히 가동 중이다. 2018년 특허받은 피막 표면처리 기술을 앞세워 유럽 환경 규제를 통과할 비인계 피막 스마트공장을 준비하고 조선·철강 등 신규 사업 영역을 탐색하며 38명의 직원과 함께 새로운 생존 공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위기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위기 이후를 준비하는 현장의 기록이다.
전기차 시대, 철선의 운명이 바뀌다
전기차 확산과 중국산 완제품 공세로 철선 제조업계의 체감 경기가 급격히 냉각됐다. 신현구 회장은 “산업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방향을 잡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철선은 철근 결속, 파스너 원재료, 각종 기계·부품용 선재로 폭넓게 사용돼 왔다. 그러나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체결 부품과 선재 사용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축 이동으로 철선 수요가 구조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중국발 변수가 가세했다. 과거에는 철선을 국내에서 공급받아 가공·조립하는 흐름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중국에서 완제품 형태로 직접 유입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중국산 완제품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국내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가격 경쟁은 한층 거칠어졌다. 신 회장은 “전기차 시대로 가면서 선재 시장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며 “과거 건설 현장에서 철선을 많이 사용했으나 중국산 완제품이 한국 시장을 위협하면서 가격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예전처럼 물량으로 버티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신 회장의 판단이다. 그의 시선은 달랐다. “지금 시장은 싼 제품보다 문제없이 쓸 수 있는 제품을 찾는 쪽으로 평가 기준이 분명히 바뀌었다”고 강조한다. 단가 경쟁이 심해질수록 거래처는 오히려 품질과 규격의 일관성, 납기 신뢰도를 더 엄격히 본다는 것이다. 수요가 줄수록 거래처는 오히려 더 높은 품질과 안정성을 요구하고 제조사의 대응 역량을 면밀히 평가한다는 설명이다.
평가 기준이 ‘가격’에서 ‘품질’로 바뀐 지금이야말로 39년 기술력이 빛을 발할 시점이라는 것이 대우선재의 전략이다.
다품종·소량, 현장 이해가 경쟁력
대우선재는 자동차 부품용 냉간압조(CHQ) 철선부터 전자제품용 정밀 철선, 건축용 철선, 철근 결속용 철선까지 산업 현장별로 요구되는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겉보기에는 같은 철선 같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요구 조건이 모두 다르다. 인장강도와 연신율, 표면 상태, 가공성, 규격 허용 범위까지 세부 기준이 제각각이다. 생산은 자연스럽게 다품종·소량 구조로 운영된다.
이 회사가 강조하는 해법은 ‘현장 중심’이다. 납품 이후 거래처 공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시 제조 단계로 되돌려 원인을 분석하고 공정 조건을 조정한다. 38명의 인력이 생산·품질·관리 전 과정을 긴밀히 연결해 대응 속도를 높였다.
신 회장은 “요즘의 추세로 볼 때 많이 파는 회사보다 요구에 정확히 맞춰주는 회사가 오래 갈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의 지속성은 현장을 이해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국내 주요 거래처에 철선을 안정적으로 납품하며 장기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장 대응력 덕분이다. 39년 축적한 표면처리 기술력
철선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은 표면처리와 열처리 공정이다. 철선은 녹과 마모에 취약해 표면 상태가 가공성과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우선재는 품질 고급화를 위해 인산염 및 석회 피막 시설로 표면처리한 제품을 시장에 선보였다.
여기에 2018년 4월 특허받은 피막 표면처리법과 2013년 4월 도입한 열처리 공정법 등 특허 기술 사업화를 통해 성과를 냈다. 이들 기술은 제품의 내식성을 높이고 외관 품질을 개선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의 활용도를 높였다. 철선 제조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이다.
신 회장은 “기술은 말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돼야 한다”며 “공정이 안정돼야 거래처도 안심한다”고 말했다. 핵심은 ‘언제 생산해도 같은 결과’다. 공정이 흔들리면 후공정에서 불량과 손실이 발생한다. 회사는 단기 단가 인하보다 불량률을 낮추고 품질 편차를 줄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대우선재의 탄탄한 제품력은 포스코 우수기업 선정, 충주시 유망 중소기업,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뿌리기술 전문기업 인증 등 다양한 인증을 통해 인정받는 기반이 됐다. 특히 2020년 7월에는 한국산업기술원으로부터 소재·부품 전문기업으로 인증받아 업계에서 기술력을 과시했다. 2022년에는 ‘대한민국 중소벤처기업 대상’에서 품질혁신 부문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친환경·신사업으로 재도약… 지역사회도 함께 성장
최근 대우선재가 가장 공들이는 분야는 비인계 피막 스마트공장 구축이다. 비인계 피막은 피막(표면처리) 성분 중 인(P)을 포함하지 않는 무기질 표면처리 기술로 유럽 환경 규제를 통과할 수 있는 친환경 공정이다. 유럽은 납, 인 등 유해 물질 사용 제품을 점점 퇴출하고 있다. 대우선재의 비인계 피막은 납 등 유해 물질 대신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유럽 내 자동차, 전자, 건설 등 다양한 산업에서 적용이 확대되고 있다.
신 회장은 “친환경 표면처리 기술 도입으로 유럽 시장에서 산업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친환경은 선택이 아니라 준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기준을 먼저 맞춘 기업이 우선적으로 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대우선재는 현재 공장을 짓기 위해 땅을 매입한 상태다. 기존 설비와 스마트공장 구축 솔루션을 연계해 제조 공정을 최적화하고 공정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품질 균일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비인계 피막 외에도 대우선재는 조선과 철강 분야로 사업 영역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신 회장은 “환경 변화로 선재 제조 기업들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은 특수 용접용 철선과 선박 구조용 철선 수요가 있다. 철강 분야에서는 녹에 강하고 강도가 높은 고내식·고강도 철선 수요가 주목된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케이스, 해상 풍력발전 구조물, 데이터센터 건축자재, 해상 플랜트 설비 등 미래 성장 산업에서 고품질 철선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우선재는 기존 철선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이들 연관 산업에서 새로운 제품과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어려울수록 기술과 노하우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신 회장의 철학이다. 업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고 계획했던 일정이 틀어지고 시장 변수도 많지만 대우선재는 준비를 멈추지 않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응이라고 본다.
충주여고 장학금 전달식. 대우선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실천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 4월 충주여고에 장학금을 전달한 것이 대표적이다. 신설아 대표가 직접 참석한 이날 전달식에서 대우선재는 성적 우수자와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 2명을 선정해 각 720만 원씩 장학금을 지급했다.
신 회장은 “지역의 청소년들이 학업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학금을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이 성장하는 만큼 지역사회에도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제도 개선 없인 100년 기업 어렵다
신 회장은 안정적인 2세 경영 체제 전환을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업 승계를 어렵게 만드는 진짜 문제는 배우자 주식 등의 문제”라며 “100년 기업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관점은 명확하다. 가업 승계는 부를 물려주는 문제 이전에 기업을 계속 운영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창업주 사망 또는 승계 과정에서 배우자 명의 주식 처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경영권이 쪼개지거나 의도치 않은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신 회장은 “실제 경영과 무관한 주식 규정 때문에 승계 과정이 복잡해지고 기업의 연속성이 흔들린다면 그 피해는 직원, 협력사, 산업 전체로 번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업 승계를 특혜로 보는 시각이 아니라 산업의 연속성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신 회장은 “중소기업들은 새로운 법령에 대한 인지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각 담당 부서에서 설비, 안전장비, 관리 등에 대해 충분히 계도하고 제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중소기업은 법무팀이나 전담 안전 조직이 없어 새 법이 생겨도 어디까지가 합법인지, 설비를 얼마나 바꿔야 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신 회장이 강조한 것은 ‘계도와 제재’의 순서다. 어떤 설비가 부족한지, 어떤 안전장비가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선행돼야 하며 개선 기간을 거친 이후의 고의·반복적 위반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처벌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는 “중소기업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준 뒤 책임을 물어야 법의 취지가 제대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긍정적 마인드가 곧 기술이 되는 현장 만들 것”
신현구 대우선재 회장 인터뷰
신현구 대우선재 회장(사진)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긍정적 마인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지난해 열심히 일해준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일을 즐기면서 하자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즐겁게 하면 생각에 따라 많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고 품질 개선으로 이어져 좋은 결과가 나온다”며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 침체로 매출이 일부 떨어졌지만 올해는 만회할 수 있도록 모두가 최선을 다하자는 메시지였다.
38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대우선재는 조직 내부 결속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다. 신 회장은 “대우선재 하면 품질이 우수한 기업으로 인식되길 바란다”며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위해 서비스 품질과 사회적 책임까지 실현하는 기업으로 지속 성장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품질·서비스·책임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회사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뜻이다. 납기 약속을 잘 지키고, 문제가 생겼을 때 회피하지 않고 바로 대응하며, 고객 요구에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하는 것과 함께 안전한 작업 환경, 환경기준을 지키는 생산, 법·규정 준수 등이 모두 포함된다.
신 회장은 “가격으로 승부하는 회사가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믿음이 쌓이는 거래처가 되고 싶다”며 “오래 거래할 수 있고 위기 때도 신뢰가 유지되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대우선재가 선택한 길은 명확하다. 위기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위기 이후를 준비하는 것. 39년간 쌓아온 기술력에 친환경과 스마트공장이라는 날개를 달아 조선과 철강 등 새로운 업종 진출을 모색하며 100년 기업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충북 충주 공장의 열처리로가 오늘도 뜨거운 이유다. 공정 고도화와 기술 축적, 직원에 대한 믿음이 대우선재가 다시 쓰는 생존 공식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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