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전경.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이 건물은 수교 이전 민간 참여 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보존됐다. 삼성전자 제공. 뉴스1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7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기로 하면서 이 공간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다. 1926년 7월부터 1932년 4월까지 약 6년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머물렀던 장소다. 김구 주석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이곳에서 집무와 회의를 이어갔다. 이봉창 의사의 일왕 투탄 의거와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 역시 이곳에서 준비된 것으로 전해진다. ● 민가로 남았던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복원까지
임시정부가 항저우로 이동한 뒤 이 건물은 민가로 사용됐다. 이후 오랜 시간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됐다. 한중 수교 이전까지 한국 정부 차원의 공식 관리도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0년대 초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복원 논의가 민간 차원에서 이뤄졌다. 삼성물산은 사내 공모 과정에서 중국 출장을 다녀온 이재청 영업담당 부장의 제안을 검토했고, 이를 복원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어 내부 논의를 거쳐 복원 사업이 결정됐다. 다만 당시에는 한중 수교 이전이어서 행정 절차와 협의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물산은 문화부와 독립기념관의 협조를 받아 1991년 상하이시와 복원 합의서를 체결했고, 건물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이주 문제도 함께 해결하며 공사를 진행했다.
복원 과정에서는 당시 건물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3층 연립가옥 형태를 살리고, 계단과 창틀 등 세부 요소를 정비했다. 1920년대 사용됐던 탁자와 의자, 침대 등 집기류도 확보해 내부를 재현했다.
공간 구성도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나뉘었다. 1층은 회의와 접견 공간, 부엌으로 꾸며졌고, 2층은 국무령과 직원 집무실, 3층은 주요 인사들의 숙소로 재현됐다. 복원에는 약 30만 달러가 투입됐으며, 공사 시작 후 1년 5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내부 모습.1993년 복원 직후(왼쪽)과 최근 모습(삼성전자 제공) 준공식은 1993년 4월 13일, 제74주년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에 열렸다. 행사에는 독립운동가 유족과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윤봉길 의사의 손자 윤주웅 씨는 당시 편지를 통해 “임시정부 청사가 다시 모습을 갖춘 것을 보며 깊은 감회를 느꼈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생전 문화유산 보존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해 왔고, 이후 유족들도 관련 기부와 환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에는 호암미술관이 소장하던 서수상이 정부에 기증되며 월대 복원 작업에 힘을 보탰다. 당시 복원 공사가 한창이던 광화문 앞 월대에서는 이 서수상이 ‘마지막 퍼즐’처럼 남아 있던 동물상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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