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외곽의 한 지하철 연장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매일 오후 정해진 시간이면 창문을 닫고 실내로 들어간다고 했다. 발파 작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공사로 주민들 사이에서는 진동과 소음, 미세먼지에 대한 불만이 쌓여왔고 올해 초에는 공사 중지 민원까지 제기됐다. 이처럼 도심 건설 현장의 발파 작업을 둘러싼 갈등이 전국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최근 수도권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지하철 연장, 복합개발, 도로 확장 공사가 잇따르면서 발파 작업 빈도도 덩달아 증가했다. 문제는 과거와 달리 공사 현장 주변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병원, 학교, 주거단지가 밀집한 지역에서 발파가 이뤄지면서 안전성과 생활환경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현장에서는 공사 중지 요구나 손해배상 청구로 갈등이 장기화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되는 발파 관련 민원 역시 최근 5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 신도시 개발 지역과 구도심 재개발 현장에서 민원이 집중되는 양상이다. 현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예전 같으면 문제없이 진행됐을 공사가 이제는 주민 설명회부터 난관”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구조적 변화가 있다. 과거 발파 공사는 대부분 도심 외곽이나 산업단지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주거지 한복판에서 대규모 굴착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주민들의 환경과 안전에 대한 인식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과거에는 감내하던 불편을 이제는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결국 도심지 환경이 복합화되면서 기존 발파 방식만으로는 사회적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단순히 공사 속도나 경제성만 따질 것이 아니라 안전, 환경, 지역사회 수용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다행히 대안 기술은 이미 존재한다. 무진동 굴착 공법 등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하면서도 경암 지반에서 효과적인 작업이 가능한 기술들이 현장에서 검증 단계를 거쳤다. 문화재보호구역이나 정밀 장비가 설치된 시설 인근처럼 발파가 원천적으로 제한되는 현장에서 활용도가 높다.
과거에는 발파가 지반 굴착의 표준처럼 여겨졌지만 현재는 현장 조건, 사회적 반응, 환경 규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건설업계 전반에서 다양한 기술적 대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와 지자체도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안전 기준 강화와 민원 예방 체계 구축, 현장 환경 관리 가이드라인 마련 등이 핵심 과제다.
도심 인프라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발파 공법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은 낮아지는 상황이다. 건설업계가 현장의 현실과 주민 요구를 균형 있게 반영한 기술적 전환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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