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무 의원이 대표 발의한 ‘엔지니어링산업 진흥법’ 개정 법률안이 이달 초 공포됨에 따라 2026년 6월부터 발주청은 공공 프로젝트 사업 추진 시 대가 산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엔지니어링산업은 엔지니어의 창의성과 축적된 경험이 핵심 경쟁력인 사람 중심의 고부가가치 지식기반산업이다. 그럼에도 엔지니어링은 공사나 물품 구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낙찰률이 적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적정 대가 미지급→낮은 처우→우수 인력 기피→기업 경쟁력 약화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글로벌 엔지니어링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점유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로 나타나며 엔지니어링산업 전반의 성장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엔지니어링 사업의 대가는 기술 난도와 위험 요인, 전문 인력의 투입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책정돼야 하나 현실에서는 물가상승률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장에서는 예산 편성 시 기준과 발주 시의 대가 산출 기준이 상이해 부족한 예산을 이유로 저가 발주가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80% 초반의 낮은 낙찰률을 유발하는 입찰가격평가산식, 대가 산출 내역의 비공개로 인한 깜깜이 입찰, 기술 서비스를 ‘단순 용역’으로 취급하는 인식도 저가 발주의 원인이다. 이러한 낮은 대가는 곧 품질 저하와 안전 문제를 유발해 국가 재정사업의 지연으로 직결된다. 장기적으로는 유지관리 비용 증가와 사고 위험 증가로 인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이 같은 문제가 지속되는 배경에는 발주·입찰 단계에서 대가 산출 근거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 구조적 한계도 자리하고 있다. 엔지니어링사업자는 입찰 단계에서 발주 금액 총액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세부 산출 내역 등 대가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입찰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발주청의 대가 산출 내역 공개율이 약 11% 수준인 상황에서 최근 ‘엔지니어링산업 진흥법’ 개정을 통해 공공 프로젝트에서 발주청의 대가 산출 내역 공개가 의무화된 것은 발주 단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업계 역시 앞으로 저가 발주와 대가 없는 추가 과업 지시 등 발주청의 불공정한 관행도 많이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법적 근거 마련만으로 현장의 관행이 바로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다. 발주 단계에서 예산에 맞춘 관행적 감액과 가격 중심의 평가 방식이 지속된다면 산출 내역 공개만으로는 발주·입찰 구조에 내재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법 개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예산편성지침상의 설계비 요율을 단기적으로 산업부 고시인 ‘엔지니어링사업대가의 기준’의 요율과 일치시켜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설계비 요율을 삭제하고 사업대가기준 준용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적격심사의 낙찰하한율도 공사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2∼5% 상향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사업 발주 시 직접 적용되는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 등 계약 관련 법령에도 입찰 시 대가산출 내역 공개가 반영돼야 하고 발주 기준 전반에서 기술 가치 반영 원칙이 일관되게 적용돼야 한다. 대가의 적정성과 공정성이 법과 계약 규정 속에서 함께 보장될 때 엔지니어링산업은 비로소 가치에 상응하는 적정 대가를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마이클 루이스는 관료주의를 다룬 책 ‘The Fifth Risk(다섯 번째 위험)’에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수록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엔지니어링이 바로 그렇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설계와 검토, 기술적 판단이 국가 인프라의 안전과 효율을 떠받치고 있다. 기술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그 부담은 더 큰 위험과 비용으로 사회 전체와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과 산업, 사회 인식 전반의 전환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법령에 근거한 정당한 사업 대가 기준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적용되도록 발주·계약 전반의 운영 방식을 점검하고 기술 난도와 위험 요인이 합리적으로 반영되는 발주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엔지니어링 기업 역시 저가 수주 경쟁에서 벗어나 기술력과 품질 중심의 경쟁 체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사회 전반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과 축적된 기술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식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
엔지니어링의 대가를 바로 세우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대한민국 엔지니어링산업 도약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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