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반도체 시장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구형(범용) D램 메모리 가격이 6개월 연속 오르더니, 6년 8개월 만에 6달러 선을 넘어선 건데요. 보통은 새로 나온 메모리 가격이 더 비싼 게 자연스러운 흐름인데, 이번엔 거꾸로 구형이 신형보다 비싸지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범용 제품이자 구형 규격인 DDR4 8Gb(기가비트) 1Gx8의 9월 평균 고정거래가격(기업 간 대규모 계약에 활용되는 가격)은 6.3달러로, 전달보다 10.53% 올랐습니다. 이는 반도체 초호황기였던 2018년 12월(7.25달러)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더 놀라운 건 구형 DDR4 가격이 신세대 D램인 DDR5보다 더 비싸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DDR4 16Gb 2Gx8의 가격은 지난달 13.2달러로, 같은 용량의 DDR5 16Gb 2Gx8 가격(6.1달러)을 6월부터 꾸준히 웃돌고 있습니다. DDR4 수요가 급증하자 반도체 업체들은 원래 올해 말 중단하려던 DDR4 생산을 연장했고, 가격 인상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DDR은 D램 성능을 구분하는 기술 표준으로, 뒤에 붙는 숫자가 높을수록 최신 제품을 뜻합니다. DDR4는 2014년, DDR5는 2020년쯤 양산이 시작됐습니다. DDR5는 DDR4보다 속도가 약 2배 빠르고 전력 효율도 30% 높지만, 그럼에도 DDR4 가격이 더 비싼 건 업계에서도 이례적인 상황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인공지능(AI) 가속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에 집중하면서 구형 D램 생산을 줄인 데 따른 것입니다. 여기에 글로벌 IT 기업들의 구형 서버 교체 수요까지 단기간에 몰리면서 가격이 급등한 겁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번 메모리 가격 상승세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연말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대규모 쇼핑 행사와 연초 신학기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겹치면서 메모리 사용량이 꾸준히 높게 유지될 거라는 이유입니다.
다만 일부에서는 가격 상승 폭이 점차 줄고 있어 내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상승세가 끝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실제 DDR4 8Gb 1Gx8의 고정거래가격은 7월 전달 대비 50%, 8월 46.15%씩 올랐지만, 9월에는 10.53% 상승에 그쳐 상승률이 눈에 띄게 둔화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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