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락 LG AI연구원 최고AI과학자(CSAI·Chief Scientist of AI) 부사장 겸 미시간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LG 제공
인공지능(AI) 4대 석학으로 꼽히는 얀 르쿤 뉴욕대 교수는 미국 빅테크인 메타의 AI수석과학자를 겸하고 있다. ‘AI 아버지’로 불리며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명예교수는 10여 년간 구글에서 AI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구글의 AI 딥러닝 팀인 ‘구글 브레인’의 설립을 주도한 앤드루 응 스탠포드대 교수는 2014년 중국 최대 규모 검색엔진 기업인 바이두에 합류했다.
이처럼 글로벌 빅테크들은 세계적인 석학을 영입해 핵심 역량을 조기 확보하는 동시에 이들과 일하고 싶어 하는 개발자들을 끌어들이는 일석이조 효과를 누렸다. 최근 미중간 AI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AI 인재 순유출국으로 분류되는 한국도 서둘러 기업과 대학간 장벽을 허물고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선 LG AI연구원의 최고AI과학자(CSAI·Chief Scientist of AI)로 영입된 이홍락 미시간대 컴퓨터공학과 교수가 산학 겸직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이 교수는 국제전기전자공학회가 선정한 세계 10대 AI연구자로 ‘구글 브레인’을 거쳐 2020년 LG AI연구원에 합류했다. AI를 미래 먹거리로 선제적 투자에 나선 구광모 ㈜LG 대표가 직접 영입한 그는 3년 만에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LG는 2021년 그의 근무 지역인 미시간주 앤아버에 AI 연구원 미국 지사도 설립했다.
● “경직성 버리고 기업과 대학 모두 유연한 자세로 윈윈해야”
최근 본보와 만난 이 부사장은 “미시간대는 AI 분야에서 10대 대학으로 평가받으며 뛰어난 인재들이 몰리고 있는 곳”이라며 “LG 입장에서도 회사가 자체적으로 하기 힘든 중장기 연구를 수행하기 좋은 환경이고, 미국 내 인재 채용이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인재 확보 측면에서도 전략적 윈윈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학교와 기업이 유연한 자세로, 50 대 50이든 70 대 30이든 다양한 비율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경직성을 버리고 기업과 대학 모두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최근 ‘딥시크 쇼크’에서 보듯, AI의 혁신이 인재의 양적 확보가 아닌 핵심 인재들의 역량에 달려있는 만큼 경계를 가리지 않는 핵심 인재 확보와 협업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기업과 대학간 인력 교류가 제한적이고, 산학협력도 연구 프로젝트를 단기 지원하거나 기업이 대학원 석박사들을 선확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재용 회장이 직접 영입한 AI 석학 세바스찬 승(승현준) 프린스턴대 교수가 사업부와 견해 차이 등으로 퇴사해 지난해 초 학계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기업이 석학들을 영입하는데 소극적이었던 배경에는 ‘보안’ 문제가 적잖이 작용했다. 그러나 이 부사장은 “미시간대에서 산학을 진행할 때는 오직 LG의 독점적 파트너로 연구하기 때문에 보안 이슈는 해소될 수 있다”고 우려를 일축했다. 기업 내부 데이터를 사용하는 연구는 LG AI연구소에서 수행하고, 교수로서 학교에서 수행하는 연구는 좀 더 장기적 미래를 위한 선행연구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에선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데, 학교 연구 성과에도 기여하면서 향후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에서 활용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대학 입장에서도 산학 확대라는 이점이 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이 부사장은 “대학마다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는 어렵지만 미시간대 학생들이 LG와 산학을 진행하며 LG 자체으로 하기 힘든 선행 연구를 할 수 있으니 기업과 대학 서로에게 ‘윈윈’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혁신적 연구 성과를 기다려주고 지원하는 시스템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은 모델에서 성공한 기술을 더 큰 모델과 데이터로 확장하는 스케일업을 위한 환경이 미국은 잘 갖춰져 있다”면서 “반면 우리나라는 좋은 아이디어를 혁신 기술로 확장하는 연구 지원 시스템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커다란 연구 성과를 낸 구글의 개발자들도 처음엔 연구 업적이 미미하거나 경력이 길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혁신적 기술 개발을 이뤄냈을 때 이를 더 큰 성공으로 확장하는 시스템을 잘 마련하면 학교와 기업, 해당 인재 모두 글로벌 탑급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핵심 인재 확보와 더불어 국내 업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컴퓨팅 자원 확충을 꼽았다. 2023년도 과기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주력 AI 그래픽처리장치(GPU)인 ‘H100’의 국내 보유량은 2000개 수준에 불과하다. KAIST도 지난해 12월에야 H100 2개를 확보했다. 미국 빅테크인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MS)가 각각 15만 개를 보유한 것과 격차가 매우 큰 상황이다.
이 부사장은 “국가의 AI 경쟁력을 측정하는 지표 중 하나가 GPU 인프라 규모”라며 “기업이나 학교가 자체적으로 충분히 늘리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AI 오픈소스 모델들이 빠르게 발전하며 가격 압박이 큰 상황에서 빅테크들은 인프라 확보에 굉장히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절대적인 규모에 있어 미국 중국과 비교하면 GPU 자원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과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식 석박사 학위를 주는 세계 최초의 사내 대학원인 ‘LG AI 대학원’이 올 9월 정식으로 문을 연다. ‘첨단산업인재혁신특별법’ 시행에 따라 교육부의 정식 인가를 받게 되는 첫 사례다. 이 부사장은 “기업에 필요한 실질적 문제해결과 학문적 연구를 결합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고 의미 있는 시도”라며 “다른 기업에도 좋은 롤모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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