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올린 식품업계, 호실적… 그리드플레이션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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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상반기 영업익 385억→1174억
롯데웰푸드-해태 등도 깜짝 실적
“소비자에 부담 전가 과도” 지적
업계는 “비용절감, 해외서 성과”

원자재값 인상 등을 이유로 최근 제품 가격을 올린 주요 식품업체들이 올해 상반기(1∼6월) 시장 전망을 뛰어넘는 실적을 내면서 ‘그리드플레이션’(탐욕+물가 상승)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업체들은 비용 절감 노력에 해외 시장 개척 성과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비용 상승분을 뛰어넘는 가격 인상을 단행한 결과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식품업체 줄줄이 ‘어닝 서프라이즈’

28일 국내 주요 식품기업들의 올 상반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농심은 상반기 영업이익 1174억 원을 올리며 지난해 같은 기간(386억 원) 대비 203% 늘었다. 반기 기준 사상 최대 규모다. 삼양식품은 2분기(4∼6월)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영업이익인 440억 원을 거두며 상반기에만 679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전년 동기 대비 31.1% 늘었다. 롯데웰푸드(87.9%), 해태제과(75.5%), 풀무원(33%), 동원F&B(30%) 등의 상반기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줄줄이 상승했다.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도 높은 수준을 보였다. 오리온(15.3%)과 삼양식품(12.8%)은 식품업계에선 보기 드문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냈다. 롯데칠성음료(8.0%), 오뚜기(7.6%) 등의 영업이익률도 올 상반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평균 영업이익률(3.82%)보다 높았다.

식품업체들의 호실적 배경으로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가격 인상이 첫손에 꼽힌다. 농심 등 라면 제조사들은 지난 2년간 2차례 이상 가격을 올렸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편의점 기준 농심 신라면(5개입) 가격은 4750원으로 전년 대비 250원 올랐고, 오뚜기 진라면(5개입) 가격도 4750원으로 전년 대비 650원 올랐다.

제품 가격 인상은 현재진행형이다. 롯데웰푸드는 추석을 앞두고 다음 달 1일부터 대표 소시지 제품 ‘키스틱’ 가격을 2000원에서 2200원으로 올린다. 하림은 닭가슴살 제품 4종의 가격을 39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한다.

● 식품업계 “해외 개척과 비용 감소 안간힘”

일각에서는 식품 제조사들이 소비자와 유통업체에 과도하게 부담을 전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대형마트, 편의점 등은 식품업체가 가격을 올려도 인상된 납품가를 즉각적으로 최종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근 국제시장에서 주요 곡물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식품 가격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에 따르면 옥수수 가격은 지난해 8월 248.8달러에서 올 8월 188.9달러로 24% 하락했다. 밀 가격도 같은 기간 319.3달러에서 283달러로 11.3% 떨어졌다. 원가 부담이 낮아졌음에도 정부 압박으로 일부 제품만 가격을 낮추는 데 그치면서 식품업체를 향한 ‘그리드플레이션’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식품업계는 해외 사업 성장과 각종 비용 절감 노력에 따른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시장이 원가 부담과 정부의 고물가 관리 등으로 실적이 주춤한 사이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실적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올해 상반기 농심은 전체 영업이익의 50% 이상을 해외에서 거뒀다.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던 방식에서 현지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물류비용을 대폭 낮췄다. CJ제일제당도 북미에서 만두, 피자 등 주요 품목 매출이 13% 늘었다. 만두는 시장 점유율이 49%까지 늘어 1위 자리를 지켰다.

그럼에도 식품의 특성상 한 번 오른 가격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식료품 지출 비중이 큰 저소득층의 부담이 더 커진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손실을 피하기 위한 기업의 가격 인상이 결과론적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늘리면서, 의도치 않게 소비자 후생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식품업계#호실적#그리드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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