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사람만 아는 조용한 사치의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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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의 고급스러운 의상이 인상적인 기네스 팰트로와 주드 로 주연의 영화 ‘리플리’의 스틸 컷
주인공들의 고급스러운 의상이 인상적인 기네스 팰트로와 주드 로 주연의 영화 ‘리플리’의 스틸 컷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아는 사람만이 아는 ‘조용한 럭셔리’가 뜨고 있다. 로고로 뒤범벅된 노골적인 패션은 저물고, 구태여 부(富)를 과시하지 않아도 은근하게 ‘부내’가 드러나는 간결한 스타일에 열광하는 것이다. 새로운 트렌드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된 틱톡에서는 #QuietLuxury가 붙은 영상이 약 2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주인공들의 고급스러운 의상이 인상적인 HBO 드라마 ‘석세션’의 스틸 컷.
주인공들의 고급스러운 의상이 인상적인 HBO 드라마 ‘석세션’의 스틸 컷.
조용한 럭셔리가 지금 갑자기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경기침체, 금융위기 등이 반영된 결과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부의 유동성과 SNS의 발달로 주로 과시형 소비를 했다면, 엔데믹 선언 이후 경제적인 불확실성이 도래하면서 부의 과시를 자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린 것. 최고급 원단으로 제작한 심플한 디자인의 옷은 오래도록 입는 ‘지속가능’의 가치까지 부여한다.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더로우. 브랜드 제공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더로우. 브랜드 제공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브루넬로 쿠치넬리. 브랜드 제공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브루넬로 쿠치넬리. 브랜드 제공
조용한 럭셔리는 최근 미국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HBO 드라마 ‘석세션’의 인기에 힘입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석세션’은 마치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 왕국을 떠올리게 하는 미디어 재벌가의 암투를 그린 작품으로, 등장인물들은 당연하게도 재벌이다. 이들은 주로 무채색이나 뉴트럴 톤의 니트와 슈트, 로고 없는 볼캡과 스니커즈 등으로 짐짓 ‘검소한’ 차림새를 즐긴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중산층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다. ‘올드 머니’ 패밀리가 부를 과시하는 방식은 이처럼 은밀하고 노련한 게 핵심이다.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로로피아나. 브랜드 제공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로로피아나. 브랜드 제공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랄프 로렌. 브랜드 제공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랄프 로렌. 브랜드 제공
메타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옷장에 가득 찬 회색 반팔 티셔츠는 한 장에 50만 원에 달하는 브루넬로쿠치넬리의 맞춤옷으로,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적인 예다. 스타일 아이콘으로 불리는 재클린 케네디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지금까지 추앙받는 이유도 조용한 럭셔리, 올드 머니, 스텔스 럭셔리를 잘 활용했기 때문. 로고가 드러나지 않는 액세서리와 가볍고 품질 좋은 코트 등을 기가 막히게 매치한 놀라운 패션 감각은 지금 봐도 세련됐다. 영화 ‘대부’의 감독인 프랜시스 코폴라의 딸인 소피아 코폴라도 모태 금수저답게 올드 머니 룩의 귀재로 불린다. 그의 일상 스타일을 찬찬히 살펴보면 네이비 컬러가 얼마나 기품이 넘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네이비 컬러 니트에 화이트 팬츠를 입거나, 네이비 컬러 미니원피스에 발레리나 슈즈를 매치하는 등 일반인들의 옷장에도 있을 법한 아이템을 세련되게 활용한다.

로고와 노출 없고 정제된 실루엣, 고급스러운 소재 사용
버추얼 인플루언서 소피아의 올드머니 룩. 뉴시스 제공
버추얼 인플루언서 소피아의 올드머니 룩. 뉴시스 제공
최근 개인 휴가 때 발생한 스키 사고가 법정 공방으로 번지면서 재판까지 가게 된 기네스 팰트로의 ‘법정 출두 룩’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더로우의 코트와 올 블랙 드레스, 크림색 터틀넥 스웨터 등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면서도 조화로운 핏을 선보여 ‘빌리어네어 시크’의 정수라 평가받았다. 관능의 아이콘이던 카일리 제너는 요즘 어퍼 이스트사이드 며느리 느낌의 얌전하고 우아한 룩에 빠졌다. 노출이 거의 없는 미니멀한 드레스에 로고 없는 액세서리를 매치해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인상을 주는 식이다.

스타일 아이콘 소피아 리치의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올드머니 룩. 뉴시스 제공
스타일 아이콘 소피아 리치의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올드머니 룩. 뉴시스 제공
사실 조용한 럭셔리는 Y2K와 같은 트렌드라고 보기 어렵다. 매 시즌 ‘미니멀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런웨이에 존재했지만, 덜 주목받았을 뿐이다. 올슨 자매는 아예 자신들이 전개하는 브랜드인 더로우의 아이덴티티를 ‘조용한 럭셔리’로 정했고, 질샌더는 단조롭다고 느껴질 정도로 깔끔한 룩을 고수하며 미니멀리즘의 아이콘이 됐다. 스웨덴 브랜드 토템이나 뉴욕 기반의 케이트, 보테가베네타 또한 고급스러운 소재와 구조적인 디자인, 정제된 실루엣으로 조용한 럭셔리를 표현한다.

평범해보이지만 알고 보면 고급 소재의 의상을 고수하는 마크 저커버그. 뉴시스 제공
평범해보이지만 알고 보면 고급 소재의 의상을 고수하는 마크 저커버그. 뉴시스 제공
조용한 럭셔리라 불리는 절제된 미니멀리즘은 로로피아나나 브루넬로쿠치넬리가 없어도 시도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이때 커다란 로고가 붙어 있는 아이템은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간결한 디자인에 뉴트럴이나 모노톤 컬러 아이템으로 선택해볼 것. 가장 중요한 건 소재다. 컬러와 디자인이 예뻐도 소재가 따라주지 않으면 조용한 럭셔리가 아니라 그냥 ‘조용한’이 된다. 철마다 트렌디한 제품 여러 개를 구매하기보다는 가격이 좀 나가더라도 질 좋은 아이템 하나에 투자하면 오래도록 제 몫을 할 테니 후회는 없을 것!

오한별 프리랜서 기자
#2023 trend watch#조용한 사치#조용한 럭셔리#quietluxury#미니멀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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