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규제 없는 자발적 탄소 시장, 신뢰가 생명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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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기술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
탄소 배출 기업은 사회적 책임 이행
VCM 활성화는 탄소 중립에 필수
그린워싱 우려 해소가 관건

탄소 중립이 글로벌 기준으로 확산되면서 자발적 탄소 시장(Voluntary Carbon Market·VCM)이 주목받고 있다. VCM이란 기업 또는 비영리단체 등이 자발적으로 탄소 감축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이로부터 발생한 탄소 상쇄 크레디트(carbon offset credits)를 거래하는 시장을 말한다. VCM은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용어였다. 그러나 파리협약 이후 기업들의 넷제로(Net Zero) 선언 등으로 탄소 상쇄 크레디트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늘어나는 가운데 투자 수익을 기대하는 금융회사 등 기관투자가가 진입하면서 거래 규모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에 따르면 VCM의 거래 규모는 2020년 3억 달러에서 2030년 최대 5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될 정도로 빠르게 활성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탄소 시장이 규제 시장인 배출권거래제(K-ETS)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데다 관련 인프라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이 자발적 시장을 활용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탄소 중립의 실현 수단으로뿐 아니라 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 기업들이 자발적 시장에 관심을 가질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VCM의 의의와 한계, 발전 방안을 분석한 DBR(동아비즈니스리뷰) 6월 1호(370호) 스페셜리포트를 요약해 소개한다.

● 자발적 탄소시장의 의미
VCM은 탄소 감축 의무와 관계없이 기업, 비영리단체, 개인 등이 사회적 책임과 환경 보호를 위해 발생시킨 탄소를 자발적으로 상쇄하거나 마케팅에 활용하는 등의 목적으로 탄소 배출 감축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그로부터 생성된 크레디트를 거래하는 시장을 말한다. 크레디트 1개는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감축된 1t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나타낸다. 프로젝트 개발업자, 프로젝트 인증 기관과 등록소, 투자자, 중개업자, 최종 수요자인 기업 등 다양한 경제 주체가 VCM에 참여한다. VCM은 규제 시장보다 유연해 탄소 감축과 관련한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이 보다 손쉽게 자금을 조달하고, 수요자인 기업 또한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 탄소 감축에 기여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한 예로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20년, 대기 중에 배출한 탄소보다 더 많은 양의 탄소를 제거하는 카본 네거티브(carbon negative) 전략을 발표하고 탄소 포집, 토양 탄소 격리 등의 탄소 제거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넷제로를 선언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이처럼 탄소 배출 감축 프로젝트에 투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탄소 배출을 상쇄하는 VCM이 주목받고 있다.

● 신뢰성 부족과 그린워싱 우려
하지만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VCM은 발전을 저해하는 구조적인 문제 또한 안고 있다. 바로 국제적으로 통일된 기준이 없어 시장이 프로젝트별로 파편화돼 있고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VCM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탄소 배출 회피 프로젝트’를 두고 그린워싱(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그런 것처럼 표시·광고하는 행위)의 우려와 비판이 커지고 있다. 탄소 배출 감축 방식은 크게 제거 방식(removal)과 회피 방식(avoidance, reduction)으로 나뉜다. 제거 방식은 크게 직접대기탄소포집(DAC) 같은 기술 기반 방식과 조림 같은 자연 기반 방식으로 나뉘는데, 크레디트의 품질은 높지만 기술 발전의 미흡으로 공급이 제한적이고 가격이 높은 단점이 있다. 반면 회피 방식은 재생에너지, 산림과 토지 이용 등 VCM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형으로, 비용 부담이 낮은 장점은 있으나 크레디트 생성량에 대한 정확한 측정이 어려워 그린워싱의 문제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최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연구팀과의 공동 조사를 통해 “세계 최대 탄소감축 인증기관인 ‘베라’가 수행한 열대우림 보존 프로젝트(REDD+)로부터 발생한 탄소 회피 크레디트의 90% 이상이 환경 보호 혜택이 전무한 유령 크레디트(phantom credits)”라고 지적해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 국제사회의 노력과 향후 과제
국제사회는 탄소 감축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하는 VCM의 순기능에 주목하면서 거래 표준을 제정하고 시장 인프라를 정비하는 등 시장을 확대,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2020년 9월 국제금융협회(IIF) 후원하에 유엔 기후특사인 마크 카니의 주도로 설립된 ‘VCM 확대를 위한 협의회(TSVCM)’는 VCM의 독립적인 자율 감시 기구인 ‘VCM 무결성 위원회’를 설치하고 핵심 탄소 원칙을 발표했다. 또 영국 정부와 유엔개발계획(UNDP)의 후원하에 2021년 설립된 ‘VCM 무결성 이니셔티브(VCMI)’는 기업들이 탄소 크레디트를 사용할 때 준수해야 할 실행 규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는 탄소 크레디트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민간 주도의 노력이 다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30여 년의 역사를 거쳐 발전해 온 VCM은 본격적 성장의 초기 단계에 진입하면서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대한상공회의소가 탄소감축인증센터를 설립하고 거래 촉진을 위한 민간 플랫폼이 등장하는 등 민간 차원에서 VCM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탄소 중립과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임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대외 신인도 및 국제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VCM의 탄소 크레디트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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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자발적 탄소 시장#vcm 활성화#그린워싱 우려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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