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 해제 운운, 공허한 망상”… 하루 3회 한미 NCG회의 등 비난
시진핑 방북뒤 ‘핵보유국 지위’ 공세… 북중러 연대 강화 명분쌓기 측면도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6차 한미 핵협의그룹 회의. 국방부 제공
북한이 13, 14일 이재명 정부를 비난하며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는 담화를 잇달아 쏟아냈다. 10일(현지 시간) 한국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채택한 공동성명과 11일 제6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등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를 강조한 데 대해 반발한 것. 최근 중국, 러시아와의 밀착 행보에 나서고 있는 북한이 ‘비핵화 불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북-중-러 협력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北, 李 대통령 향해 “평화 가면 벗어던져”
1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전날(13일) 담화에서 11일 한미 NCG 회의와 8∼9일 미일 확장억제대화(EDD)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한 데 대해 “교전 상대방의 핵무장 해제를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며 공허한 망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추종 세력들의 무의미한 반공화국 비난 수사와 핵 위협 공조는 되돌릴 수 없는 우리의 핵보유국 지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며 “미-일-한 3개국이 아무리 강변해도 핵보유국으로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현 지위를 절대로 변경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포함해 13일에만 외무성 대외정책실장 서면 답변, 외무성 10국 대변인 담화 등 3차례 입장을 냈다. 북한은 2023년 핵보유국 지위를 헌법에 명시한 뒤 비핵화 요구에 대해 ‘위헌을 강요하는 부당한 주장’이라고 반발해 왔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핵화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 못 하게 쐐기 박기를 시도하는 일련의 과정”이라며 “동북아에서의 진영 구도를 확실하게 설정하면서 자신들의 전략적인 위치도 제고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韓-이탈리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이재명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이탈리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로마=김재명 기자 base@donga.com북한은 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비판 메시지도 내놨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외무성 10국 대변인은 담화에서 “한국의 집권자가 거치장(거추장)스럽게 쓰고 있던 평화의 가면을 벗어 던졌다”고 비난했다. 한-EU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북한 핵 개발과 북-러 밀착을 비판한 데 대해 반발한 것. 10국 대변인은 “우리 국가에 대한 명백한 주권침해, 엄중한 적대행위로서 지금껏 입 닳도록 떠들어 온 ‘체제 존중’, ‘적대행위 불추구’와 같은 위장 간판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10국은 북한이 2023년 12월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뒤 대남 총괄 부서인 통일전선부를 축소·개편해 만든 조직으로 10국 대변인 명의의 입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는 14일 북한 담화와 관련해 “정부는 긴 안목을 가지고 한반도 평화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외무성 대외정책실장도 서면 답변을 통해 최근 미국 행정부가 한국에 대한 무기 판매를 승인한 데 대해 “조선반도(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의 긴장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가려는 미국과 한국의 군사적 공모 결탁이 체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고 반발했다.
● 習 방북 직후 ‘핵보유국 지위 불변’ 연쇄 담화
북한의 연쇄 담화는 8, 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이후 핵보유국 지위 강조를 위한 공세적 행보로 풀이된다. 시 주석이 방북 과정에서 비핵화나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전략적 입지를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이란 상황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고, 미국이 이란 문제에서 핵심 요인으로 강조한 게 핵 프로그램이라는 점, 지난달 미중 정상회담에서 생각보다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강조했다는 점 등을 북한이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북한이 북-중-러 연대 강화를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 지위 인정 강요이자 북-중-러 군사협력 불가피성을 정당화하고, 실제 추진하기 위한 빌드업 과정”이라며 “한미일의 안보 공조에 맞서 북-중, 북-러 동맹을 축으로 하는 정면 돌파 노선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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