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미분양 7만5000채 10년만에 최다… 분양 연기-포기 속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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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선 물량 6만2000채 이미 넘겨
1월 미분양 전달보다 10.6% 급증
업계 “2, 3년뒤 주택공급 부족 우려”
정부, 미분양 매입 아직 고려 안해

경북 포항에서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는 시행사 A사는 최근 2000억 원 규모의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심사 과정에서 증권사가 ‘보증해줄 시공사를 찾아오라’고 했는데, 미분양 리스크가 불거지며 건설사를 찾지 못했다. 토지 매입과 인허가까지 마쳤지만 결국 사업이 멈췄다. 이 증권사 관계자는 “고금리 부담을 안고 대출 연장까지 하며 시장 회복을 기다리기엔 A사가 자금이 부족해 사업을 포기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며 분양 시장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미분양 물량이 10년 2개월 만에 최대로 치솟는 등 미분양 우려가 높아지자 건설사들은 높은 이자 부담을 지면서까지 분양 일정을 연기하거나 사업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 ‘분양 연기→이자 부담 증가→사업성 악화→자금난’이라는 악순환으로 건설사 연쇄 도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2, 3년 뒤 주택 공급 부족 우려도 나오지만 정부는 현재의 미분양은 분양가가 높기 때문으로 미분양 주택 매입 등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 올해 10채 중 7채는 분양 연기

28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1, 2월 분양한 9개 민간단지 중 6개 단지는 평균 청약 경쟁률이 1 대 1에도 못 미쳐 청약 마감에 실패했다. 지난해 1, 2월 전국 분양 사업장(55곳·민간) 평균 청약 경쟁률이 10.8 대 1임을 감안하면 1년 새 분위기가 급변했다.

미분양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날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5359채로 전달(6만8148채) 대비 10.6% 증가했다. 10년 2개월 만의 최대치로 지난해 12월에 정부가 위험선으로 보는 미분양 물량(6만2000채)을 뛰어넘은 데 이어 더 늘어난 것이다.


분양을 미루는 단지도 급증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 2월(지난해 말 조사 기준) 전국에서 민영 아파트 총 4만8272채가 분양 예정이었지만 실제 분양은 28.5%인 1만3740채에 그쳤다. 10채 중 7채는 분양을 연기했다는 의미다.

● 건설업계 자금난 우려 커져
건설업계 자금난도 심해지고 있다. 울산 C사업장은 최근 만기가 도래한 브리지론을 8% 수준이던 연 이자(수수료 포함)를 2배 이상 올리는 조건으로 6개월 연장했다. 미분양 리스크가 너무 커지며 브리지론을 상환하기 위한 본PF 전환에 실패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시장 개선 시점이 불투명하다는 점. C사업장 관계자는 “분양 대금으로 대출을 갚아야 하는데 분양을 늦춰 매달 이자 부담이 2억 원 안팎에서 5억 원 수준으로 급증했다”며 “6개월은 자체 자금으로 버텨도 그 이후론 답이 없다”고 했다. D시행사 관계자는 “분양을 미룰수록 사업성이 악화되지만 그렇다고 분양을 밀어붙이는 건 ‘짚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꼴’”이라며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악성 미분양보다는 그나마 낫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분양이 이어질 경우 장기적으로 주택 공급 부족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2025년 전국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16만6791채로 예상된다. 통상 전국 신규 주택 수요가 연간 25만 채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공급이 부족한 셈이다.

특히 서울 민간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 2만2886채에서 내년 1만4104채, 2025년 2885채로 급감한다. 연간 서울 적정 입주 물량(3만∼4만 채)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안성용 한국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분양 연기, 취소 사태가 이어지면 2, 3년 뒤 공급 부족 등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분양가와 주변 시세 마찰로 생긴 소비자들의 소극성(미분양)을 어떻게 세금으로 부양하느냐”며 “지금은 금융위기처럼 모두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기보다는 (건설사의) 자업자득인 면이 많다”고 답했다. 이어 “현 미분양은 건설사 자구노력으로 해소될 수 있다”며 “민간 공급이 위축되면 공공 공급을 가속화해 공급 변동 폭을 줄이는 게 정부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미분양#분양 시장#분양 연기#건설업계 자금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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