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에게 전세금 못 받아” 살던 집 경매로 떠안는 세입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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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수도권 세입자 경매신청
87건으로 작년 대비 61% 늘어
“정점 고려하면 강제 경매 늘 것”

이달 6일 주택 1100여 채를 보유하다 숨진 ‘빌라왕’ 김모 씨 소유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다세대주택이 1억8400만 원에 낙찰됐다. 경매를 신청한 사람과 낙찰자는 모두 세입자 신모 씨. 신 씨는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까지 마쳐 경매에서 낙찰만 되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세입자였다. 최초 감정가는 2억6000만 원. 하지만 3차례나 유찰되며 가격이 떨어졌다. 보증금 이상으로 주택을 낙찰받을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 신 씨는 결국 보증금 1억8500만 원과 단 100만 원 차이 가격으로 자신이 살던 전셋집을 매수하기로 했다.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잇달아 불거지고 부동산 침체로 역전세가 심화되면서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경매 법정을 찾는 세입자가 크게 늘고 있다.

16일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월 수도권에서 아파트 등 주거시설에 머무는 세입자가 경매(강제·임의경매 포함)를 신청해 법원에서 경매가 열린 건수는 87건(유찰로 인한 중복 집계 제외)으로 전년 동월(54건) 대비 61.1% 늘었다.


지난해 수도권에서 세입자가 직접 신청해 열린 경매는 978건으로 1000건에 육박한다. 2018년에는 375건에 그쳤지만 △2019년 531건 △2020년 637건 △2021년 824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세입자들이 살던 집에 대해 강제경매를 신청해 낙찰자에게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낙찰자가 나타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경매시장에서 선순위 세입자가 있는 주택은 가격이 낮더라도 낙찰받은 뒤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여기에 전세사기가 불거진 뒤 빌라 매매가 하락세도 가팔라져 인기가 없어 유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빌라는 2020년 11월 선순위 세입자가 강제경매를 신청했지만 현재까지 17회나 유찰돼 주인을 찾지 못했다. 경매 가격은 최초 감정가 2억100만 원에서 97% 하락한 565만 원으로 떨어졌다. 이 집에 사는 세입자가 낸 보증금은 2억4500만 원. 감정가보다 보증금이 높은 ‘깡통전세’ 물건이다 보니 주인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세입자가 본인이 머물던 집을 경매로 낙찰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경매로 나온 집을 낙찰받은 건수는 105건으로 2021년 66건보다 59.1% 늘었다. 세입자가 낙찰받은 금액도 지난해 196억3083만 원으로 2021년 101억5815만 원 대비 두 배에 가까운 93.25%나 급증했다. 배소현 전세사기피해자모임 대표는 “손해를 감수하고 경매를 진행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뤄졌던 예정 경매가 많은 데다 시장 침체로 매물이 많아 경매 소요 기간이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강은현 EH경매 대표는 “전셋값 상승 정점이었던 2021년에 맺은 전세 계약의 만기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세입자들이 신청한 강제 경매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세입자에게 저리 대출을 한시적으로 허용해 경매로 내몰린 세입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깡통전세 문제를 세입자와 집주인 간 경매로 해결할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전세시장이 급격히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책적 저리 대출을 속도감 있게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경매#세입자#전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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