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빛이 되어[수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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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스페셜]
김봉선 더편한요양병원 간호사

김봉선 더편한요양병원 간호사
김봉선 더편한요양병원 간호사
오늘도 할아버지는 간호사실을 지나쳐 간다. 입원 중인 할머니를 보기 위해서다. 할아버지는 항상 같은 시간에 병원에 도착하여 같은 시간에 나간다. 2년이 넘어가는 오늘도 같은 시간에 병원 문을 열고 또 닫고 나가신다.

처음 할머니가 우리 병원으로 온 건 목련이 활짝 핀 3월 초 햇볕이 제법 따뜻한 오후였다. 75세에 갑자기 중풍이 왔다고 했다. 그날은 바람이 매서운 추운 겨울이었다. 큰 키에 입은 바지가 바람에 나풀대자 빼빼 마른 다리가 바지 안에서 꼬챙이 같은 윤곽선을 드러낸다. 굽은 등에 거북이 등 같은 까만 배낭을 멘 할아버지는 곧장 할머니 병실로 향했다. 그리고 짜여진 순서대로 일을 하듯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잡고 있는 할머니의 왼손을 주무르기 시작해서 팔로 어깨로 올라간다. 그리고 오른손, 오른다리, 왼다리 순으로 마무리를 하신다. 다음으로는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셔 와 얼굴부터 발끝까지 닦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면 보디로션으로 얼굴에서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바르신다. 그리고 대소변을 본 기저귀도 직접 본인이 새로 갈아 주신다. 그중에서도 가장 내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할머니를 향한 할아버지의 따스한 눈빛과 다정한 목소리였다. 우리 직원의 물음에는 항상 무 자르듯 짧게 말하며 차갑던 할아버지가 말이다.

그러다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갑자기 찾아왔다. 병원에서도 면회가 금지 되었다.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을 하던 할아버지의 불안감은 더 했다. 간호사실의 전화벨은 새벽부터 울렸다. 할아버지의 걱정과 불안한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그 날부터 할아버지와의 전화통화는 시작되었다. 업무를 하다가도 벨이 울리면 하던 일을 내려놓고 복도를 뛰어 할머니의 귀에 휴대전화를 갖다 댔다. “○○야, 코로나 때문에 면회를 못 간다. 사랑한다”고 외쳤지만 할머니는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한마디의 대답도 들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사랑한다고 수십 번 되풀이를 한 다음에야 통화를 끝내셨다.

하지만 오랜 와상으로 누워 계셔서인지 갑자기 할머니의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다. 집중치료실로 옮겨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염원으로 며칠은 더 버틸 줄 알았지만 할머니는 그날 새벽에 얕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할머니 상태를 전하는 심정이 착잡하였다. 할아버지에게 할머니의 존재를 알기에 전화기 번호를 누르는 손이 떨려왔다. 할아버지의 흐느낌과 슬픔이 전화선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병원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입구로 들어서는 종종걸음에서 할아버지의 다급한 마음이 전해왔다. 그리고 집중치료실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오열과 함께 아침 해가 떠올랐다. 할머니를 장례식장으로 보내드리며 할아버지의 떨리는 두 손을 맞잡았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할아버지의 등을 쓸며 그동안 수고하셨다고 전했다. 할아버지도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내 등을 토닥였다. 돌아서 가는 할아버지의 외로운 등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바쁜 업무로 며칠을 정신없이 보내던 중 전화벨이 울린다. 할아버지다. 다시 한번 고마웠다고 전하며 “너는 내 딸이다”라며 말하는 음성이 떨려왔다. 그 얘기에 나도 목소리가 같이 떨렸다. “네, 아버지 딸 할게요”라고 말해드렸다.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다.

할아버지를 오랫동안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별 하나 없는 칠흑 같은 밤에 반짝이는 작은 불빛 같은 한 사람만 있다면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이 계속 되고 있다. 머잖아 재난의 슬픔과 무기력이 멈추고 밤하늘에는 별빛이 가득할 것이다. 할머니의 빈자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클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다시 삶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는 작은 불빛이 되어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전화를 건다. 아버지, 잘 지내시고 계시지요?

김봉선 더편한요양병원 간호사
#da 스페셜#da#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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