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文정부 규제입법 3.6%만 규제개혁위 심사 거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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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규제입법 전수분석]
규제 신설-강화 5798건 전수분석
이전 정부보다 본심사 비율 줄어… 국회 안 거친 시행령 규제 87%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입법으로 새로 생기거나 강화된 전체 규제 가운데 3.6%만이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 본심사를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96.4%에 대해선 ‘비중요 규제’로 구분해 본심사 절차를 생략했다. 또 신설 및 강화 규제의 86.9%가 국회 논의 없이 국무회의만 거치면 되는 시행령 이하의 하위 법령으로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들을 충분한 논의 절차를 거치는 대신 우회로로 만드는 사례가 늘어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규제 입법에 대한 전수 분석을 진행했다. 규개위 규제심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2017∼2021년 정부 입법을 통해 만들어진 신설·강화 규제는 총 5798건으로 집계됐다. 건수 자체는 이전 정부와 비슷했다.

그러나 신설·강화 규제 중 ‘중요 규제’로 구분돼 규개위 심사를 거친 것은 210건(3.6%)에 불과했다. 박근혜 정부(9.4%)나 이명박 정부(20.7%)보다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거나 국제 기준과 비교해 과도하다고 판단되는 규제는 중요 규제로 분류한다. 그러면 국무총리,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부위원과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규개위 심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나머지 5588건(96.4%)은 ‘비중요 규제’로 구분해 본심사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국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 법률 개정 대신 각 부처가 정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으로 만들어진 규제 비중도 높아졌다. 현 정부에서 시행령 이하 하위 법령으로 생긴 규제는 전체 5798건 중 5038건(86.9%)이다. 이명박 정부(73.8%), 박근혜 정부(77.9%)보다 비중이 높아졌다.

2020년 초 사외이사 재직 기간을 6년으로 제한하는 등 자격 조건을 강화한 규제도 시행령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개인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항인 만큼 법률에 반영해 국회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본보가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의뢰해 16∼21대 국회에 제출된 상장사 관련 법률안 517건의 1370개 규제 항목을 분석한 결과 문재인 정부가 제출한 법안의 규제 강화 항목 비중은 76.9%로 이전 정부와 비교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평등법 114만곳 추가적용, ‘非중요 규제’ 분류해 본심사 패스


文정부 규제입법 3.6%만 심사 검증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의 심사, ‘非중요’가 96%… 정밀심사 안해
中企 61만곳에 영향 유급휴일법… “과하지 않다” 이유로 검증서 빠져
국회 거치는 법률 규제는 13%뿐… 하위법령 코스 통해 쉽게 통과



2020년 7월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포함된 9건의 규제 사항에 대한 예비심사를 벌여 모두 ‘비중요 규제’로 분류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강화와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및 공시의무 부과 등이었다. 재계에서뿐만 아니라 경제 전문가들의 반대 목소리도 컸던 규제들이다. 중요 규제가 아니라는 판단을 받은 만큼 민간위원들이 포함된 규개위 본심사를 거치지 않아도 됐다. 이 법안은 2020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 현 정부서 대폭 늘어난 ‘비중요’ 판단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처럼 규개위 예비심사에서 규제를 비중요 규제로 분류하는 비중이 이전보다 늘어났다. 23일 동아일보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2008∼2021년 정부 입법으로 신설·강화된 규제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대통령 소속 위원회인 규개위는 정부의 행정규제를 심의·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무총리, 기획재정부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등 정부위원 8명과 민간위원 17명이 규제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한다. 민간위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함부로 규제를 양산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둔 장치인 셈이다. 그런데 모든 규제를 일일이 들여다볼 수 없으니 규개위에선 예비심사를 통해 ‘중요 규제’로 판단할 때만 본위원회 또는 분과위원회에 상정해 심사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신설·강화된 규제 5798건 중 ‘비중요 규제’로 판단된 5588건(96.4%)은 해당 규제의 적절성이나 부작용에 대해 객관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단계를 건너뛴 셈이다.

행정규제기본법 시행령에서는 ‘중요 규제’로 판단하는 기준으로 ‘규제를 받는 집단과 국민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연간 100억 원 이상인 규제’ ‘규제를 받는 사람의 수가 연간 100만 명 이상인 규제’ 등 8가지를 고려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기준에 해당하더라도 규제에 얽힌 이해관계자들이 동의하거나 해당 규제 외의 대안이 없는 경우 ‘비중요 규제’로 판단할 수 있다. 결국 예비심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는 국무조정실의 판단이 절대적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규개위는 2018년 5월 예비심사에서 남녀고용평등법의 적용 범위를 5인 미만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비중요 규제로 분류했다. 2018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은 약 114만 개에 달한다. 그 다음 달엔 중소·영세 사업장 근로자의 휴식권 확보를 위해 ‘관공서 공휴일’을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유급휴일로 의무 적용한다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안이 예비심사에 올랐다. 중소기업 약 61만 곳이 적용 범위에 들어간다. 두 시행령은 ‘중요 규제’ 기준(100만 명 이상 영향, 100억 원 이상 비용)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외 사례 등과 비교했을 때 과하지 않다’는 이유로 비중요 규제로 분류됐다.

규개위 본심사를 건너뛰었다가 업계의 강한 문제 제기로 판단을 뒤집은 사례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2018년 3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최대주주 자격심사 대상을 최다출자자 1명에서 최대주주 특수관계인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규개위는 ‘여타 법령 및 해외 사례 등에 비춰 적정성도 인정된다’며 ‘비중요 규제’로 판단했지만 금융권에서 큰 반발이 나왔다. 심사 대상 확대에 따른 시간, 비용, 인원 등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였다. 결국 ‘중요 규제’로 다시 분류돼 본심사에 올라간 이 법안은 그해 6월 ‘철회 권고’를 받았다. 규제 범위가 과도하게 넓고, 범위 및 규제 도입에 따른 영향 분석이 미흡하다고 판단해서였다. 규개위가 발간한 ‘2018 규제개혁백서’에서 확인한 이 사례는 철회 권고 대상인 과잉 규제가 자칫 실제 법령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을 보여준다.
○ 국회 대신 국무회의만 거치는 하위 법령 규제도 늘어

문재인 정부에서는 하위 법령을 통한 규제도 이전 정부보다 늘었다. 문재인 정부 기간에 신설·강화된 규제(5798건) 중 법률로 규정한 규제는 760건(13.1%)에 그친다. 이명박 정부의 26.2%, 박근혜 정부의 22.1%보다도 낮은 수치다.

규개위 심사 대상은 아니지만 상법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2020년 초 상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사외이사의 자격 조건을 강화했다. 상장사 이사 등은 퇴직 후 사외이사를 맡지 못하도록 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강화하고, 사외이사의 총 재직 기간도 6년(계열사 합산 9년)으로 제한했다. 사외이사의 임기가 길어지면 기업이나 오너와 유착할 수 있다는 게 규제를 만든 배경이었다. 결국 2020년 76명, 2021년 84명의 64개 대기업집단 사외이사가 짐을 싸야 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사외이사의 임기를 법으로 제한하지는 않고 있다.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항인 만큼 국회에서 여러 의견을 수렴한 뒤 법률 개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시행령을 통해 규제가 이뤄졌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갈수록 중요 규제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규제 심사가 부실하게 진행된다는 방증”이라며 “규제 신설·강화 과정에서 본심사 비중을 높이고 규제 비용편익 분석을 충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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