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 넘는 집 있으면 전세대출 금지” 규정에 월세 내몰린 실수요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14일 16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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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직원인 김모 씨(37)는 2년 전인 2020년 초 서울에서 강원 원주시로 발령 났다. 당시 전세대출을 받아 원주시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최근 계약 만기를 앞두고 은행을 찾았다가 좌절했다. 그가 2019년에 매입한 서울 송파구 20평대 아파트(전용 49㎡) 때문이었다. 당시 5억 원이었던 시세가 최근 9억 원을 넘겼다. 은행 직원은 “서울 집값이 많이 올랐으니 전세 대출 연장이 안 된다“며 ”만기 시점에 대출금 전액을 갚아라“고 독촉했다. 결국 그는 원주에서 월세로 거주할 집을 알아보고 있다. 김 씨는 ”서울 집은 지방 발령으로 기존 세입자 계약을 연장해 나가라고 하지도 못하는 상태”라며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세대출을 받았는데 연장이 안 된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 전세대출 규제에 실수요자 피해 속출
1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전세 보증금을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를 억제하기 위해 2년 전인 2020년 1월 시행한 전세대출 규제가 ‘1주택 실수요자’들을 월세로 내몰고 있다. 직장이나 자녀교육 문제로 다른 지역에 거주하거나,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해 보유 주택에 입주할 수 없는 1주택자까지 대출이 막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2019년 12·16대책을 통해 2020년 1월 20일부터 시세(KB국민은행과 한국부동산원의 시세 중 높은 가격 적용) 9억 원을 넘는 주택을 보유한 경우 전세대출을 금지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두는 일명 ‘갭투자’로 집값이 급등하는 것을 막으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규제 당시 9억 원 미만이었던 주택 가격이 대거 오르면서 해당 주택을 보유하며 전세를 살던 1주택자들이 대출 연장을 거부당하고 있는 것이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020년 1월만 해도 8억7000만 원이었지만 지난달 12억6000만 원으로 뛰었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매수해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 씨(34)는 집값이 더 이상 오르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 회사 순환 근무 방침에 따라 부산에서 일해야 하는데, 부산에서 전세대출을 받기 힘들 수 있다는 은행 직원 말을 듣고서다. 그는 “보유 아파트 시세가 8억9500만 원으로 전세대출 실행 시점에 9억 원을 넘기면 대출이 거절될 수 있다고 해서 부산 거주 주택을 월세로 알아봐야할 것 같다”고 했다.

● 유명무실한 대출 금지 예외조항
정부는 직장 이동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전세를 살아야 하는 경우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예외조항을 적용받으려면 기존 보유 주택과 전셋집 모두에 세대원이 실제 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세대출 연장이 안 되는 ‘1주택 세입자’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2020년 6·17대책을 통해 전세대출 규제를 더 강화했다. 2020년 7월 10일 이후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3억 원 초과 아파트를 매입할 경우 전세대출 보증 이용을 제한하면서 전세대출을 금지했기 때문에, 시행일 이전 전세대출을 받은 ‘1주택 세입자’들은 전세대출 연장이 힘들어진다.

전문가들은 2년 전 규제 효과가 미미했고 규제 부작용이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발생하고 있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12·16대책 등으로 전세대출을 받지 못해 월세로 밀려나 주거비 부담이 커지는 실수요자들이 늘고 있다”며 “규제 적용을 받는 고가 주택 가격 기준을 올리거나, 예외조항을 넓게 적용해 실거주 목적을 인정해 전세대출을 허용해주는 방식 등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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