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마련 ‘막차’ 탄 MZ세대…회사 대출에 ‘부모 찬스’까지 총동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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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패닉바잉’ 리포트]〈상〉2030 “영영 집 못살까 겁나”

올 들어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아파트에 30대 이하 젊은층의 ‘영끌’ 매수세가 몰렸다. 집값 대비 대출 비중이 50%에 육박하면서 상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1988년 지어진 노원구 상계주공6단지 조경.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올 들어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아파트에 30대 이하 젊은층의 ‘영끌’ 매수세가 몰렸다. 집값 대비 대출 비중이 50%에 육박하면서 상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1988년 지어진 노원구 상계주공6단지 조경.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017년 결혼 후 전세로 살던 권모 씨(36)는 최근 서울 강서구에 있는 전용면적 84m²짜리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다. 지난해 초만 해도 집 살 계획이 없었지만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값과 전셋값이 동반 상승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은행 대출뿐 아니라 회사 복지기금에서도 대출을 받았다. 여기에 기존 전셋집 보증금과 그간 모은 저축, 양가 부모님께 차용증을 쓰고 빌린 현금까지 탈탈 끌어다 집값 9억 원을 마련했다.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만 230만 원에 이르지만 “집값과 전셋값이 올라도 더 이상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영끌 매수’를 해서라도 집을 샀다는 데 만족하는 셈이다.

○ 은행, 회사 대출에 ‘부모 찬스’까지 총동원

동아일보 취재팀은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수도권에서 아파트를 산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이 주택 매입을 결심한 건 “지금이 내 집 마련의 ‘막차’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집값이 치솟고 청약 경쟁률이 높아지는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7∼12월) 전세난이 겹치면서 2030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주거 사다리의 첫 계단인 전셋집을 구하는 것부터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작년 8월 서울 아파트 매수자 중 30대 이하 비중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9년 1월 이후 처음으로 40%를 넘었다.

서울 빌라에서 전세로 살던 신혼부부 양모 씨(33)는 지난해 5월 경기 남양주시 전용 59m² 아파트로 이사했다. 청약에서 10번 넘게 떨어진 그는 지난해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걸 보고 아파트 매수를 결심했다. 더 늦추다가는 집 사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본 것이다. 당시 5억8000만 원을 주고 산 집은 현재 시세가 9억 원을 넘었다. 그는 “그때 산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당장 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매수에 뛰어들었다. 경기 고양시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강모 씨(36)는 지난해 11월 서울 강서구 전용 49m² 아파트(6억9000만 원)를 전세를 끼고 구입했다. 그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결혼을 대비해 신혼집을 미리 마련했다”며 “결혼하면 세입자를 내보내고 거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본보 취재팀이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6단지의 등기부등본을 전수 조사한 결과 집값 대비 대출 비중은 지난해 41.1%에서 올해 47.2%로 올랐다. 집값이 오른 만큼 대출 의존도가 단기 급증한 것이다. 올 7월 무주택자가 9억 원 이하 주택을 살 때 집값의 최대 60%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 영향도 컸다.

하지만 상계주공6단지 전용 59m² 가격이 올 9월 9억 원을 넘으면서 대출 우대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여기에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시행되는 내년 1월부터는 대출이 더 어려워진다. 영끌 매수로 먼저 집을 산 2030이 내 집 마련의 ‘막차’를 탔다고 보는 이유다.

이런 인식에는 자산 양극화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주거 사다리’에 올라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자산 격차가 한번 벌어지면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주식이나 가상화폐, 부동산 투자로 월급으로 평생 모으기 어려울 정도의 거액을 번 또래들의 성공담은 이런 심리를 더욱 부채질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0, 30대의 부모들은 집 한 채로 자산을 늘린 세대”라며 “부모가 경험한 ‘부동산 불패 신화’가 자녀 세대로 이어진 데다 최근 몇 년간 자산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걸 경험하면서 젊은층에서 집을 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6월 서울 관악구 전용 84m² 아파트(7억8000만 원)를 산 심모 씨(33)는 거주할 집을 고르면서도 미래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그는 “아직 저평가돼 있어 지금 사두면 나중에 차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 “막차라도 타 안심” vs “과한 대출, 부실 우려”


최모 씨(35)는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의 전용 84m² 아파트를 ‘갭투자’하려고 처가살이를 자청했다. 기존 전셋집 보증금까지 보태야 갭을 메울 수 있었다. 그는 “공급을 옥죄는 정부 정책이 강남 집값을 더 올릴 것이라고 봤고 실제 더 오르지 않았냐”며 “집값이 잠시 주춤해도 장기적으로는 오를 것”이라고 했다.

패닉바잉한 MZ세대 대다수는 주택 구입을 후회하지 않았다. “부동산 뉴스를 봐도 이제는 화도 안 난다.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도 했다. 집값이 조정되더라도 자신이 산 가격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자금 여력이 된다면 지인들에게 주택 매수를 적극 추천할 것이라고 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20, 30대는 최근 몇 년간 집값 급등만 경험하다 보니 시장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경향이 있다”며 “분명 집값 조정기가 올 텐데 이때 버틸 수 있을지를 따져보지 않고 매수하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올 9월 서울 성북구 아파트(전용 84m²)를 9억 원에 사기로 계약한 김모 씨(34)는 밤잠을 설친다. 매물이 귀할 때라 집주인 요구대로 역대 최고가에 계약했다. 은행 대출이 어려워 제2금융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다 보니 금리는 연 5%에 육박했다. 그는 “집값 하락이 머지않았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값이 단기간에 워낙 많이 올라 조정기가 올 수 있다. 당장은 미미하지만 금리 인상이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서서히 나타난다”며 “집값이 하락하면 무리한 대출은 가계대출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2030#영끌#내집마련#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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