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해지는 허위거래…인공지능으로 ‘집값 띄우기’ 잡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21일 11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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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시세 띄우기나 편법증여를 위한 이상거래 등을 단속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등기부 권리분석을 통한 부동산 거래 모니터링 방안 연구’에 대한 용역입찰을 발주했다. 연구의 핵심은 AI를 이용한 등기부 분석을 통해 부동산 계약부터 거래신고, 등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추적 분석하는 시스템 구축이다.

정부는 그동안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집값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시세 띄우기용 허위거래를 꼽고, 이를 단속하는 데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최근 1년 7개월 새 부동산 실거래로 신고한 뒤 취소한 건수가 19만 건에 달하고, 이 가운데 일부는 허위거래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상태다.

게다가 가족은 물론 친인척이나 지인, 직원 등을 내세워 자전거래나 허위신고를 하는 등 갈수록 교묘해지는 허위거래 방법을 기존 방식으로 단속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 인공지능으로 집값 띄우기 잡겠다
국토부가 연구용역을 발주하면서 제시한 과제는 크게 4가지이다.

우선 AI를 통한 등기부 권리분석을 통해 부동산시장 동향 모니터링(①), 이상거래 분석 및 등기부상 특징 정의(②), 기타 특이 사항 모니터링 및 분석 등을 위한 방법 제시(③) 등 3가지이다. 여기에 부동산 거래신고 정보와 등기부 정보를 연계해 실거래 조사에 활용하는 방안(④)도 요구하고 있다.

부동산시장 동향 모니터링은 거래량 및 가격 급등, 외지인 유입 및 신고가(新高價) 거래 증가 등 특이 동향 발생지역에 대한 등기부 모니터링 분석 방안 마련이 주를 이룬다. 또 실거래조사 대상지역에 대한 동향 모니터링과 분석 방안도 과제로 포함돼 있다.

이상거래 분석 및 등기부상 특징 정의는 근저당권·가등기·가처분 등을 활용한 명의신탁이나 다운계약 등 이상거래에 대한 모니터링 분석이 주요 과제이다. 또 거래신고만 있고 등기 신청이 없는 이상거래나 비거주·비경작이 의심되는 사례에 대한 모니터링 방안 마련도 요구됐다.

특이 사항 모니터링 및 분석은 피담보채무 및 임대차보증금이 거래가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매매 사례에 대한 모니터링과 분석 방안 제시가 과제이다.

이번 과제는 입찰을 통해 사업자가 선정되면 계약체결 후 6개월간 진행된다. 따라서 내년 상반기에 결과가 나오고, 이를 토대로 늦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정부 대책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 최근 1년 반 새 거래취소 건수 19만 건
정부가 이처럼 AI까지 동원한 새로운 시장 분석기법을 마련하려는 이유는 허위거래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거래취소가 건수가 적잖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부동산원이 민주당 진성준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올해 9월말까지 실거래가 신고로 접수된 전체 주택매매 334만4228건 가운데 18만9397건이 취소됐다. 5.7%에 해당하는 수치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이 가운데 시세를 띄우기 위해 허위로 신고한 뒤 취소했거나 자전거래인 경우가 상당수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민주당 천준호 의원이 지난해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등재된 85만5247건의 아파트 매매를 분석한 결과 3만7965건(4.4%)이 등록 취소됐는데, 취소건수의 32%가량인 1만1932건이 당시 최고가로 등록된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시세가 오른 사실만 공지되고 취소된 사실은 알려지지 않으면서 시세를 끌어올리는 경우도 적잖았다. 국토부가 올해 7월22일 실시한 ‘15차 주택공급 위클리 브리핑’에서 공개한 사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경기 남양주의 한 아파트는 자전거래 이후 시세가 17%가량 높아진 상태에서 28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충북 청주에서도 자전거래로 시세가 54% 높아진 상황에서 5건의 거래가 진행된 아파트 단지가 나왔다. 경남 창원의 한 아파트에서도 자전거래로 시세가 29% 상승한 이후 15건의 거래가 진행됐다.

● 교묘해지는 시세 띄우기용 허위거래
국토부 공개 사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전거래와 허위신고가 이뤄지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공인중개사 A는 지난해 6월 2억4000만 원인 처제 아파트를 딸을 앞세워 3억1500만 원에 사들인 것처럼 신고한 뒤 3개월 뒤 해제했다. 이어 2개월 뒤인 지난해 11월 다시 아들 명의로 해당 아파트를 3억5000만 원에 매수한 것처럼 신고했다. 딸과 아들의 거래는 계약서도 없고, 계약금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 허위거래였다. 그는 이후 지난해 12월 제 3자에게 이 아파트를 3억5000만 원에 매매 중개했다. 결국 처제는 1억1000만 원의 이득을 얻은 셈이다.

분양대행회사 B는 보유한 아파트 2채(시세 2억2800만 원)를 지난해 7월 대표에게는 3억400만 원에, 사내이사에게는 2억93000만 원에 매도 신고했다. 모두 계약서도 없고, 계약금이 오가지 않은 허위거래였다. 이어 같은 시기에 해당 아파트 2채를 제3자 3명에게 각각 2억9300만 원에 팔아치웠다. 한 채당 6500만 원씩 차액을 거둔 것이다.

중개보조원 C는 지난해 9월 당시 시세가 5000만 원인 매도 의뢰인의 아파트를 7950만 원에 자신이 사들인 것처럼 꾸민 뒤 제3자에게 다시 7950만 원에 팔았다. 2950만 원의 차익을 올린 것이다. 그는 허위거래와 자전거래 의심을 받고 있다.

이같은 자전거래나 허위신고는 모두 불법이다. 자전거래는 경찰청의 수사를 받으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을 처벌받는다. 허위신고는 관할 지자체를 통해 혐의가 인정되면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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