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1%, 그래도 연애보다 주식이 좋은 이유 [한여진의 투자 다이어리]

  • 주간동아
  • 입력 2021년 3월 7일 1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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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첫 매도 성공, 수익률은?


나는 요즘 수시로 주식 앱을 열어 보면서 ‘너를 믿는다’고 주문을 외기도 하고, ‘너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악다구니를 쓰기도 한다. [GettyImages]
나는 요즘 수시로 주식 앱을 열어 보면서 ‘너를 믿는다’고 주문을 외기도 하고, ‘너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악다구니를 쓰기도 한다. [GettyImages]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950210) -28.16%, 두산퓨얼셀1우(33626K) -22.32%!

‘왜 지금까지 매도하지 못했는가.’

요즘 자기비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주식공부도 좋고 가치투자 종목 발굴도 좋은데, 도대체 ‘떡하’한 종목은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상투’ 잡은 LG전자(066570), 대한항공(003490), 삼성전자(005930)는 잔고 창에 빨간불이 잠깐 들어왔을 때 매도했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가 매도 시점이었음을 알겠다. 이 세 종목은 가치투자한 셈 치자. 문제는 연일 하락 퍼레이드 중인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와 두산퓨얼셀1우다. “어찌해야 할까.” 주변에 물으면 열이면 열 다 해결책이 달랐다. “지금이라도 매도해라” “기다려라”는 대답뿐 아니라 “도대체 왜 샀냐” 등 도움 안 되는 답도 숱했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가즈아’

항체의약품 개발 전문 제약사라더니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때문에 내 항체가 다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상장 직후 4만8500원에 구입한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한때 5만2000원까지 올라 쾌재를 부르기도 했다. 보유 주식 전체에서 19.80%를 차지하는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는 회사 동료에게 추천까지 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추천받고 다량 매수한 동료에게 “언니 한 번 믿어봐”를 당당하게 속삭일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며칠 뒤 차트가 위태하더니 급기야 -30%까지 떨어지며 악몽이 시작됐다. ‘내가 추천해 매수했는데, 어쩌나’ 걱정하며 함께 매수한 동료에게 상황을 전했다. 동료는 의외로 평화로웠다. “사실 진작 매도했어”라고 말하는 동료. 띠로리~ 배신자! 주식 앞에선 친구도, 부모형제도 없다고 했던가. ‘OK!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가즈아!’

그러나 그때 ‘가즈아’를 외칠 것이 아니라 매도 버튼을 눌렀어야 했다. 자존심을 버리고 현명한 동료를 뒤따라야 했다. 그때부터 무섭게 하한가를 기록해 한때 -30%까지 내려갔다. 상투 잡은 두산퓨얼셀1우는 조용히 사고치는 남친처럼 꾸준히 주가가 내려가더니 -22.32%를 기록했다. 하지만 곧 펼쳐질 수소에너지 시대에 두산퓨얼셀은 쨍 하고 해가 뜰 것이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도 프랑스 국립의약품건강제품안정청이 췌장암 치료 항체 신약의 임상시험을 승인하면 ‘떡상’할 것이다. 무림 고수처럼 도 닦는 심정으로 원금 회복 날을 기다린다.

요즘 수시로 주식 애플리케이션(앱)을 열어 보면서 ‘너를 믿는다’고 주문을 외기도 하고, ‘너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악다구니를 쓰기도 한다. 이렇게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두산퓨얼셀1우와의 연애가 시작됐다. ‘그 수많은 잘난 놈 중 나는 왜 하필 너를 선택했을까’ ‘고무신 거꾸로 안 신고 열심히 뒷바라지할 테니 성공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끝내 배신하면 소주 한잔 마시며 잊겠노라’ ‘너랑 끝나면 눈 크게 뜨고 앞날 창창한 놈으로 고를 테다’…, 독백으로 가득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두산퓨얼셀1우와 애증의 싸움을 하며 보내던 그때, 눈에 확 들어오는 종목을 만났다. 바로 다날(064260)! 매수 버튼 눌러!!

피 같은 내 돈이 어디로 갔지?
주식이 연애보다 좋은 이유는 한 번에 여러 종목을 담아도 되기 때문이다.  [GettyImages]
주식이 연애보다 좋은 이유는 한 번에 여러 종목을 담아도 되기 때문이다. [GettyImages]
2월 18일 오전부터 상한가 +29.94%를 찍은 다날은 매수량이 매도량보다 월등히 많아 하루 종일 매수 체결이 되지 않았다. 오후 1시쯤 8680원에 매수 버튼을 눌렀는데 계속 미체결. 애가 타던 중 장 마감 10~5분 전 3번 연속 체결에 성공했다. ‘이번엔 오래 품지 않고 내일 당장 1만1500원에 매도할 테다!’ 퇴근길 전량 매도를 예약했다.

다음 날 오전 9시 장이 시작되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주식 앱을 열었다. ‘헐….’ 눈이 부시게 파란 세상이 펼쳐졌다. 끝도 없는 하락 시그널. ‘너도 똑같구나.’ 또 한 번의 연애 실패.

내가 다날을 매수한 소식을 듣고 한 템포 늦게 매수한 친구는 하한가에 다날을 샀다며 고마워했다. ‘그래 난 좋은 사람.’ 더 늦으면 다날도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꼴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하기엔 다날이라는 기업이 참 매력적이었다. 미국 증시 상장을 선언한 쿠팡에 결제시스템을 제공하는 기업 아닌가. 다날에서 발행한 암호화폐 페이코인은 2000%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며칠 기다리면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전량 9400원에 기간 매도를 예약했다. 예약 다음 날인 2월 22일은 유난히 회사 일이 많았다. 열심히 일한 후 퇴근길에 주식 앱을 열어 보니, 웬걸 잔고 리스트에 다날이 없다! ‘하루아침에 주식이 없어졌다는 게 이런 건가.’ ‘피 같은 내 돈이 어디로 갔지.’ 다시 자기비판과 함께 확인한 잔고 기간별 손익 창에 ‘다날 +8.04%’라고 떴다! 팡파파~ 드디어 첫 수익이 난 것이다.

‘너를 만난 그 이후로 사소한 변화들에 행복해져.
눈이 부시게 빛나는 아침,
너를 떠올리며 눈 뜨는 하루.
식탁 위에 마주 앉아 너의 하루는 어땠는지 묻거나,
나의 하루도 썩 괜찮았어 웃으며 대답해주고 싶어.’

다날을 만난 뒤 폴킴의 ‘너를 만나’를 흥얼거리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다날 이후에도 꾸준히 눈길이 가는 종목들이 있었다. 한농화성(011500), 키네마스터(139670), 오로스테크놀로지(322310), S-oil(010950), 애플(AAPL), 쉐브론(CVX)…. 때론 잡고 싶어 안달했고, 때론 남의 것이라고 처음부터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주식이 연애보다 좋은 건 한 번에 수십 종목을 담아도 되기 때문이다. 못난 놈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잘난 놈이 풀어주는 것. 전체 수익률 -15.51%에도 주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아, 그래도 ‘찌질한’ 종목 다 정리하고 아마존(AMZN), 카카오(035720)랑 쌈박하게 연애하고 싶다!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79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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