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도 불가피”…집주인-세입자 간 갈등의 씨앗 된 ‘임대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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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월 21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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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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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아파트를 갖고 있는 A 씨는 지난해 7월 27일 기존 세입자와 전세계약을 연장하며 보증금을 9500만 원 올렸다. 기존 보증금 2억3500만 원을 40% 높였지만 주변 시세도 오른 점을 감안해 세입자도 재계약 조건에 응했다. 하지만 나흘 뒤인 작년 7월 31일 임대차법이 시행되자 세입자는 마음을 바꿨다. 임대료 인상률이 5%를 넘을 수 없다는 규정을 들어 기존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한 것. 이에 맞서 A 씨는 보증금을 40% 높이지 않으면 본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했다.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분쟁위)까지 가 중재한 결과 집주인과 세입자는 보증금을 6000만 원 높이는 선에서 가까스로 합의했다.

지난해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급하게 시행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양측이 조정 결과에 동의하면 다행이지만 많은 경우 조정이 이뤄지지 못해 소송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당장 집을 구해야 하는 세입자로선 조정절차의 실익이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21일 지난해 분쟁위에 접수된 임대료 증액 및 계약갱신 관련 조정 건수는 155건으로 2019년(48건)의 3.2배 수준으로 늘었다. 임대차법 관련 상담 건수는 지난해 1만1589건으로 전년(4696건)의 2배을 넘어섰다. 공단 관계자는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임대차법 관련 상담과 조정 건수는 전년 수준이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지난해 7월 이후부터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분쟁조정위의 조정으로 소송까지 가지 않고 신속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긴 하지만 강제력이 없다보니 조정 결과에 불복하거나 중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조정이 완료된 649건 중 조정이 성립된 건 389건(59%)이다.

조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송으로 가기도 한다. ‘임대료 5% 이내로 재계약할 수 있다’는 정부 말만 믿었다가 소송에서 져 세입자가 낭패를 본 경우도 있다. 주택임대사업자인 집주인이 보증금 인상액을 놓고 갈등을 겪던 세입자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최근 법원이 집주인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세입자에게 집주인 요구대로 기존 보증금(5억 원)의 5%가 넘는 3억 원을 올려주라는 조정 결과를 내놓았다. 기존 계약이 있어도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뒤 맺은 첫 번째 계약이 법상 ‘최초 계약’이 되기 때문에 임대료를 5% 넘게 올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세입자는 결국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전월세 가격이 들썩이던 시기 임대차법을 기존 계약까지 소급 적용해 ‘갈등의 씨앗’을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임대차법 해설서를 내놓았지만 어디까지나 정부의 유권 해석이라 법원 판단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조정은 법리보다는 원만한 합의에 방점이 찍혀 있다보니 법원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임대차법으로 인한 혼란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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