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안부 묻는 우유배달…홀몸노인 ‘고독사’ 막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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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유업

(사)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호용한 이사장.매일유업 제공
(사)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호용한 이사장.매일유업 제공
가로 5.7cm, 세로 5.7cm, 높이 10.7cm. 180mL 우유 한 팩의 규격이다. 성인의 손 한 뼘 크기도 되지 않는 작은 우유가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외로운 죽음을 막을 수 있다. 옥수중앙교회 호용한 목사는 2003년 100가구를 대상으로 우유배달을 시작했다. 교회가 위치한 곳이자 당시 달동네로 유명했던 옥수동과 금호동을 중심으로 인근 어르신들의 영양 보충을 돕기 위한 봉사활동이었다. 교회 신도와 지인들이 힘을 보태 봉사활동을 이어가던 2006년 우유배달 과정에서 고독사한 어르신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호 목사는 우유배달을 통해 어르신들의 건강만 챙길 것이 아니라 고독사도 예방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울보 목사에서 우유 목사로


호 목사는 이름보다 ‘울보 목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기도를 하다가도 설교를 하다가도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려서다. 눈물이 많은 울보 목사는 달동네 어르신들이 내내 눈에 밟혔다. 주위의 이웃에 대한 걱정은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호 목사는 우유배달 대리점을 통해 홀로 사는 어르신들께 매일 우유를 배달해 드리되, 배달한 우유가 2개 이상 방치돼 있을 경우 가족이나 관공서에 연락해 적절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100가구에서 200가구, 300가구로 배달 가구 수가 점차 늘어나며 ‘울보 목사’는 어느새 ‘우유 목사’가 됐다.

100가구에서 2300여 가구로 대상자 확대


2020년 현재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은 서울시내 16개 구 2252가구를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17년 전 100가구를 대상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이 이렇게 많은 분들의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된 것은 각 곳에서 이어진 손길 덕분이다.

2013년에는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2015년에는 투자회사 골드만삭스가 후원을 시작하며 호 목사의 뜻에 동참했다. 2016년에는 유제품 제조와 유통에 강점이 있는 매일유업이 나섰다. 현재까지 16개의 매일유업 가정배달 대리점과 180여 명의 배달원이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을 전담하고 있다.

이 외에도 현재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을 후원하는 기업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단꿈아이, 이노레드, 중간계캠퍼스, 죠스푸드, 인사이트파트너스, 60계치킨, 피와이에이치, 텐마인즈, 러쉬, J준 성형외과, 법무법인 에셀, 기독신문까지 총 16개사다. 올해 (사)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도움이 이어졌다. 골드만삭스는 (사)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에 골드만삭스 기브스(Goldman Sachs Gives)를 통해 마련한 기부금 10만 달러를 전달했고,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원들에게 950만 원 상당의 배민 쿠폰을 후원했다.

매일유업은 6월부터 ‘소화가 잘되는 우유’ 매출액의 1%를 (사)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에 후원하기로 했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은 유당불내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제조사인 매일유업은 어르신들께 배달하는 우유도 소화가 잘되는 우유로 교체하고 교체에 수반되는 비용 전액을 지원한다. 홀로 계시는 어르신을 위해 배달해 드리는 제품인 만큼 제품의 매출을 후원에 연계하기로 한 것이다. 이 우유는 올해 패키지도 변경했는데 (사)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은 물론이고 주위의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패키지에 인쇄된 QR코드를 읽으면 제품 구매, 개인 후원이 가능한 웹사이트로 연결된다.

고독사하는 어르신이 사라질 때까지


(사)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호 이사장의 목표는 ‘고독사하는 어르신이 사라지는 것’이다. 호 목사는 “감사하게도 많은 기업이 나서 도와주고 계시지만 한 기업의 후원이라도 중단되면 많은 지역의 우유배달이 끊기는 실정”이라며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이 보다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어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분들의 건강을 챙겨드릴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홀로 사는 어르신 한 명에게 한 달간 안부를 묻기 위해서는 약 2만 원의 후원금이 필요하다. 개인 또는 기업 후원을 원하는 경우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윤희선 기자 sunny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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