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갱신권 소급 적용해 장기화 우려… 2년 후 또 치솟을 수도

이새샘 기자 입력 2020-10-24 03:00수정 2020-10-24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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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임대법 여파 급등한 전셋값, 1990년처럼 단기에 안정될까?
18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매물 게시판이 텅 비어 있다. 뉴스1
“야간근무를 하고 돌아와 아내와 같이 중개인을 따라 이집 저집 하루 종일 헤매다 보니 심신이 모두 피곤하다. 잠시 복덕방 소파에 쉬다 보니 자신이 몹시도 초라해지고 서글퍼진다.”(1990년 2월 23일자 동아일보 독자칼럼)

이 칼럼이 지면에 실린 1990년 2월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이 한 달에 13.36% 상승하며 폭등세를 보였던 시기다. 전세 계약기간을 2년으로 늘리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1989년 12월 국회를 통과해 1990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되자 ‘이사철이 아닌 겨울인데도 전셋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는 기사가 연일 쏟아졌다.

30년 뒤, 다시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전세시장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10월 셋째 주(19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주 대비 0.5% 올라 9년 만에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거래량도 급감 중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1989년에 임대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했을 때 5개월가량 불안정했는데, 지금은 그때와 같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일정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와 같지 않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 사람들이 제도에 적응하면 전세가격이 안정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때처럼 지금의 오름세가 과연 수개월 안에 진정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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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전에는 ‘소급 적용’ 없었다


전문가들은 우선 제도의 변화 폭이 완전히 다르다고 지적한다. 이번에는 계약갱신요구권 도입을 이미 체결된 계약으로까지 소급 적용했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1990년엔 소급 적용하지 않아 살고 있던 전세 계약이 끝나고 새로 맺는 계약부터 2년 단위 계약이 적용됐다.

더 큰 문제는 2년 뒤다. 지금 계약을 갱신한 매물이 새로 시장에 나올 때는 집주인들이 지난 2년간 올리지 못한 것에 향후 4년간 올리지 못할 전세금까지 더해 매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전셋값이 또다시 치솟는 2차 충격이 생길 수 있다. 전세가격 오름세가 1990년과 달리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는 배경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1990년 임대차 계약기간을 2년으로 늘리는 방안은 제도 자체가 매우 단순해 단기 충격에 그칠 수 있었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다”며 “기존의 다른 규제에 갱신권, 상한제 등이 한꺼번에 작동해 현재의 전세가격 상승세는 시작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매매시장 규제가 전세시장에 ‘도미노 효과’

서울 강남권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직장 문제 등으로 다른 지역에서 전세를 살고 있던 강모 씨(35)는 최근 전셋집을 나와야 했다. 다주택자인 기존 집주인이 자녀에게 집을 증여했는데 양도세 감면 요건을 채우려면 이 자녀가 실거주해야 한다며 계약갱신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결국 강 씨 역시 집주인 실거주를 이유로 자신이 매입해뒀던 주택의 전세계약 갱신을 거절했다. 그는 “내가 세를 줬던 세입자는 자녀 교육 때문에 이사 왔던 건데 아이가 갑자기 전학을 갈 수도 없어 결국 5억 원 이상 오른 인근의 다른 전셋집에 입주하기로 했다고 들었다”며 “나도 원래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었지만 인근에 전세 매물이 아예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매매시장 안정을 위해 강력한 대출·세제 규제를 도입해왔다. 특히 ‘자신이 산 집에 그대로 거주하라’는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는 규제가 누적되며 주거 이동의 연쇄 고리가 끊어졌다. 현재 사람들이 갖는 불만은 단순히 집이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 이처럼 이사를 하고 싶어도 이사를 할 수 없고, 이사를 하고 싶지 않아도 이사를 해야 하는 데서 야기된 측면이 크다. 결국 오른 전세금을 낼 여력이 없는, 다시 말해 주거 이동의 연쇄 고리의 맨 끝단에 위치한 서민들만 지금보다 더 열악한 주거지역으로 밀려나게 된다.

○ 물가는 낮지만 전세는 오른다

시장 상황도 차이가 난다. 당시는 정부의 경제정책 제1 목표가 물가 안정일 정도로 고물가 시대였다.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89년 5.7%, 1990년 8.6% 등이었다. 버블이 우려될 정도로 고물가가 이어지며 집값이 치솟았고, 전셋값도 함께 오르던 시절이었다. 전세가격이 오를 만한 거시경제적 요인이 충분히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유례없는 저물가 상태인데도 전세가격이 오르고 있다. 물론 전세대출금리가 낮아져 세입자들이 전세금이 높아져도 이를 충당할 여지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금리가 낮아지며 여유자금이 생기면 전세보다는 매매시장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고, 자연히 전세 수요는 줄어들게 된다. 실제로 매매시장이 활성화되며 2017년 말부터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전세가격은 2019년 말까지 계속해서 내리며 2005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전세가격 상승률이 하락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물론 집값이 급등하면 전세가격도 함께 오르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전세가격이 상승세를 타긴 했지만 급등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결국 최근의 시장 불안은 집주인들이 누적된 세금 부담, 저금리 등으로 전세가격을 올리거나 월세로 전환할 유인이 충분한 상황에서 임대차 2법이라는 정부 규제가 불을 질러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 30년 전에는 주택 공급 총량이 부족


여기에 1989, 1990년에는 서울 도심의 난개발 지역을 재개발, 재건축하는 사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도심 판자촌이나 난개발 지역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또다시 임대차시장으로 진입하면서 전세 수요는 폭발했다. 그런데 당시 주택 보급률은 60% 후반에서 70% 초반으로 총 주택 공급 자체는 부족했다. 임대차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전세는 상승세를 탈 수밖에 없었고, 법 개정은 이 같은 상승세를 단기적으로 폭발시키는 역할을 했다.

반면 현재 총량만을 따지는 주택보급률 자체는 2018년 전국 기준으로 100%를 넘어섰다. 정부도 계속해서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정부가 밝힌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5만3000여 채에 이른다.

그런데도 전세 가격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현재의 전세시장 불안이 정상적으로 수급이 이뤄지는 시장에서는 나타나기 힘든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집주인들이 규제와 저금리 등의 영향으로 월세로 내놓거나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정부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등을 통해 도심지의 민간 공급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어 2, 3년 뒤 민간 공급은 오히려 더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 정부 규제로 생긴 불안… 뾰족한 해법 없어


1990년 당시에는 문제의 원인이 비교적 단순했던 만큼 해법도 단순했다. 정부는 당시 사람들이 전세계약 때 확정일자를 받도록 해 전세 보증금에 우선변제권을 부여했고, 서민들을 위한 전세 보증금 융자도 실시했다. 가장 크게는 수도권에 주택 200만 채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워 단기간에 대량으로 공공 공급 물량을 투입했다. 재개발, 재건축도 지금보다는 수월했고 주택시장이 호황이어서 민간 공급도 원활한 편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확연하게 다르다. 전세대출은 이미 확대될 대로 돼 있고, 금리도 역대 최저 수준이다. 금융 측면에서 전세문제를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공급 측면에서도 8·4공급대책으로 쥐어짤 수 있는 물량은 다 쥐어짰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지금 사람들이 전세살이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집을 살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교육여건이나 직장 등 자신의 수요에 맞는 지역에 매매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단순 공급 확대는 해법이 되기 어렵다.

전문가들 역시 부분적인 보완보다는 정책 방향 자체를 원점에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 규제로 인해 자연스러운 이주 수요까지 차단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규제 일변도의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며 “세입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면 서민들이 사는 전세와 그렇지 않은 고가 전세를 구분해 고가 전세에 대해서는 임대차 규제를 풀어주는 등의 방안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전세 대란#임대차 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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