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업계 “국산헬기 수리온, 외산과 공정 경쟁하게 해달라”

  • 뉴시스
  • 입력 2020년 7월 29일 0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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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는 정부와 민간이 합작으로 개발기간 6년에 개발비 1조3000억원을 들여 완성한 국산헬기 수리온이 소방청의 입찰 과정에서 특정 규정 항목으로 인해 외산과 불공정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방청이 입찰에서 외산에 유리한 규정을 내세우는 바람에 수리온이 원천적으로 입찰에 참여키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항공업계의 이같은 불만에 대해 소방청은 “수개월간 논의 끝에 나온 입찰 기준일 뿐 의도적인 수리온 배제는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항공업계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국산과 외산이 가격이나 성능, 규모 면에서 별 차이가 없는데도 처음부터 수리온을 배제하기 위한 조건을 내세운 측면이 있다고 강조한다. 외산과의 공정한 경쟁이라도 하게 해달라는 게 요지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중구본)는 올해 중대형급 소방헬기 2대 입찰을 앞두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소방헬기 입찰을 위한 공개된 규격에서 최대 이륙중량을 6400㎏으로 정한 것에서 시작됐다.

국산헬기 수리온의 최대 이륙중량은 8700㎏이고, 소방청이 기존에 사용하던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의 AW139의 이륙중량은 6400㎏이다. 출발점부터 이탈리아 헬기가 유리한 것이다. 항공업계가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레오나르도에는 수리온과 유사체급인 AW189(8300㎏) 기종이 있다. 하지만 소방청이 이륙중량을 6400kg으로 정했기에 수리온은 같은 급인 AW189가 아니라 무려 2300kg이나 가벼운 AW139와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수리온은 AW139보다 최대 이륙중량이 훨씬 많이 나가기 때문에 탑재 능력이 좋은대신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수리온이 입찰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항목을 소방청이 입찰 규정으로 내세웠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헬기가 입찰에 참여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도록 규정을 정해놓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라면서 “최대이륙중량이 7500㎏ 정도만 돼도 이탈리아 헬기와 경쟁을 해볼만 한데 소방청 중구본은 이륙중량 변경 요청마저 수용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업계는 올해 중형급 헬기 2대 구매를 추진하고 있는 경찰청의 경우 엔진최대출력 요구성능을 3500마력 이상으로 설정해 수리온, AW189, H175 등 유사체급 기종이 경쟁토록 입찰을 진행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적어도 소방청 중구본처럼 불공정한 경쟁을 유도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방청 중구본도 할 말은 있다. 해당 규격은 소방헬기 기본규격에 의거했으며, 전문가들이 모인 규격 심의회에서 오랜 논의 끝에 확정된 사항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올해 입찰을 위해 지난해부터 태스크포스(TF)를 조직, 규격 심의회를 거치는 등 오랜 기간 논의를 한 끝에 해당 규격을 정했다”며 “소방헬기 기본 규격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지역에 신속하고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헬기 도입을 위해 사업계획에 따라 적법하고 공정하게 헬기 구매를 추진하고 있다”며 “수리온을 원천 배제하려고 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 구매하는 입장에서 보면 굳이 이륙중량이 최대 8600kg보다 6400kg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경우 수리온보다는 이탈리아 헬기 쪽에 점수를 더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항공업계는 계속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전부터 소방당국이 항속거리, 국토부의 형식증명, 카테고리A 인증 제출 등 입찰 기준을 정할 때 국산헬기에는 유독 까다롭게 적용하는 기류가 강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소방헬기 기본규격에 따르면 최대항속거리는 500㎞ 이상, 최대이륙중량은 4300kg 이상이면 입찰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엔진성능은 한쪽 엔진이 정지 시 수평비행 가능하거나 그 이상의 성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수리온의 성능과 중량은 이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산림청, 소방청, 경찰청, 해경청 등 5개 기관에서 운용하는 국내 관용헬기 총 121대 가운데 국산헬기는 14대에 불과하다. 아직도 국산 이용률이 현저히 낮은 수준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굳이 애국심에 기대 국산 선호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다”라면서 “외산과 동급 기종에서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산과 외산 헬기 선택을 놓고 반복되는 논란에 최근 항공업계는 정부조달에서 국산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항공업계는 정부가 군용 및 관용으로 항공기 구매·조달 시, 국산 완제기를 우선 구매하도록 법령 및 행정규칙 제·개정을 통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은 자국의 전략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국산 제품 우선 구매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헬기를 자체 개발하는 미국(92.5%), 러시아(99.7%), 프랑스(97.2%) 등은 자국산 헬기 우선 활용을 통해 항공산업을 육성하고 수출 산업화 유도하고 있다.

실제 국산 완제기의 우선 도입 시 외화 유출 방지와 관련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란 분석이다. 국산헬기 한 대당 협력업체가 담당하는 부분은 30~40%에 이른다.

국회의 움직임도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부조달계약에서 국제입찰의 예외로 인정되는 사항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자국산을 우선 사용하도록 하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과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을 대표발의했다.

홍 의원은 “정부조달협정은 일정한 적용예외 사유를 명시하고 있어 여러 국가가 이를 근거로 자국산 우선구매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자유무역질서의 틀 안에서 국제협정의 적용예외 사유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함으로써 국민 혈세를 사용하는 정부조달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국내 산업 보호 및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자 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헬기 우선 구매 법안이 통과되면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업계에 큰 힘이 될 뿐만 아니라 향후 국내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 효과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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