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이 뭔지도 모르는 판이니…혁신시대, 그만둘 때 됐구나 싶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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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웅열 코오롱회장직 사퇴 이유는…

28일 돌연 그룹 회장직 사퇴를 표명한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사진)이 29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국내에 있으면 이래저래 나를 찾을 것 같아 당분간 해외에 나가 있으려 한다”며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다만 “경영진이 정말 잘 못할 때, 정말 피치 못할 때는 대주주로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이날 블록체인 이야기를 꺼내며 사퇴를 결심한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에 블록체인 기술이 매우 중요해지는 것 같은데, 나는 블록체인이 뭔지 잘 모르겠더라. 만약 회사에서 나한테 블록체인에 대한 의사 결정을 묻는다면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았다”며 “중장기 전략을 보고받았는데 나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보고를 하는 것 같더라. 너무 슬펐고, 그래서 퇴임 결심을 더 굳혔다”

이 회장은 사퇴를 공식적으로 밝힌 뒤 돌아가신 부모님 위패가 모셔진 절을 찾아 “늦었지만 큰 짐을 내려 놨다.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여행은 창업의 가장 좋은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때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제대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작년에 미국에 잠깐 가서 젊은 친구들을 40∼50명 만났었는데, 엄청 똑똑한 사람이 많더라. 많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지난 23년간 그룹을 이끌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노사관계를 꼽았다. 코오롱은 2000년대 초 노사가 강경하게 대립했고, 강경 노조가 이 회장의 집 유리창을 깨는 사건도 있었다. 이 회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임원들과 함께 끝까지 가보자고 결심하고 피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노조원들을 만났고 진정성을 갖고 대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대립 과정에서 노사가 서로 이해를 하기 시작했고, 원칙을 지킨 덕분에 지금은 생산성이 국제 경쟁을 할 수 있을 만큼 올랐다”고 말했다. 코오롱그룹은 노사 갈등이 봉합된 이후 2007년부터 노사 무분규 선언을 했고 지금까지도 원활한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들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전무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회장을 맡고 나서 23년간 회의 시간에 단 한 번도 존 적이 없다. 아들한테도 ‘안 졸 의무는 있어도 졸 수 있는 권리는 없다’는 말도 했다”며 “아들이 재능이 없으면 재산은 몰라도 주식을 물려줄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아들이 나보다 나은 것 같다”며 웃었다.

1남 2녀를 둔 이 회장이 ‘네 번째 자식’이라 부를 정도로 애착을 갖고 투자한 세계 최초의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에 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친구가 하던 연구였는데, 회사 연구소장에게 가능성이 있겠느냐고 물어 보니 성공 확률이 ‘0.0001%’라고 보고하더라. 오기가 생겨서 회삿돈 말고 내 돈과 지인들로부터 투자를 받아 연구를 시작했다.”

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사퇴를 알리는 편지에서 퇴임 이후 새로운 창업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에게 구체적인 창업 계획을 묻자 “창업 시기는 내년 상반기가 될 수도 있고 1년이 넘을 수도 있다. 회사를 차리더라도 내가 직접 CEO는 안 하고 싶다. 다만 천재들의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다. 이제는 플랫폼 사업이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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