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은 현재 보유 중인 계열사 지분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아울러 대기업그룹에 금산분리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 같은 그룹 내 계열사 합병에 금융보험사 소유의 주식을 동원할 수 없게 된다.
이달 21일 당정협의에서 전속고발권 폐지 등 불공정거래에 대한 감시 기능을 강화한 데 이어 대기업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약화하는 조치를 정부가 내놓은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26일 밝혔다. 정부는 개정안을 10월 4일까지 입법예고한 뒤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공정거래법은 도입 38년 만에 전면 개정된다.
○ 총수 일가 지배력 약화에 초점
공정위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줄이는 취지의 규제를 개정안에 대거 반영했다.
먼저 대기업 공익법인들은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원칙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임원의 선임 정관 변경, 기업 합병 양도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특수관계인의 지분과 합해 15% 한도 내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기업들은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공익법인을 운영하고, 정부는 이 법인들에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이 공익법인을 절세와 총수 일가 지배력 강화에 이용한다고 보고 공정위가 공익법인의 의결권에 손을 댄 것이다. 2년간 유예기간을 둔 뒤 3년에 걸쳐 의결권 제한 한도를 30%에서 15%로 낮출 계획이다.
금융보험사는 현재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원칙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다만 특수관계인 지분과 합해 15% 범위 내에서 기업 합병 양도 등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공정위는 이런 골격을 유지하되 같은 그룹 내 계열사 간 합병 때는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기로 했다. 2015년 7월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시 금융보험사인 삼성화재가 의결권을 행사한 것과 같은 사례를 막으려는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시장과 주주의 동의를 받기 어려운 계열사 분할, 합병은 점점 더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준은 총수 일가가 지분을 30% 이상 보유한 상장사와 20% 이상 보유한 상장사, 비상장사 모두 20%로 일원화됐다. 이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은 현재 231개에서 607개로 늘어난다.
○ 점진적 개편으로 재벌개혁 속도 조절
재계의 관심을 모았던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과 지주회사 요건 강화는 속도 조절이 이뤄졌다. 전면개정안을 내놓기 전, 민간 학자를 중심으로 운영했던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는 당초 기존 순환출자의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는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외국 기업이 경영권을 위협하면 순환출자를 가진 기업은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또 지주회사가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계열사 지분 요건의 경우 기존 지주회사에는 기존 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요건을 유지하기로 했고, 새로 지주회사가 되는 기업에만 의무 지분을 상장사 30%, 비상장사 50%로 올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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