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제도 개선 태스크포스가 현재 5년으로 제한된 대기업에 대한 면세점 특허기간을 최장 10년으로 늘리는 권고안을 내놨다. 서울 시내 한 면세점 화정품코너에서 관광객들이 쇼핑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롯데 신라 신세계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의 특허 보장기간을 현행 5년에서 최장 10년으로 늘리는 제도 개편안이 나왔다. 정부가 쥐고 있던 면세점 확대 권한은 민간에게 넘기기로 했다.
면세점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는 이런 내용의 면세점 제도 개선 권고안을 마련해 정부에 전달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권고안은 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가 정당한 기준 없이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밝힌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른 후속조치다.
○ 대기업 10년, 중소기업 15년까지 면세점 운영
TF는 특허 기간을 지금처럼 5년으로 유지하되 대기업에 대해서는 1회,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서는 2회 갱신을 허용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현재는 대기업은 갱신할 수 없고 중소·중견기업의 갱신은 1회로 제한돼 있다. 이렇게 면세점 특허 유지 기간이 짧아 면세점 업계의 고용 불안을 야기하고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특허를 받을 때 냈던 사업계획을 잘 지키고, 노사 및 하청업체들과 상생협력을 잘하는 것이 특허 갱신의 조건이다. 이 규정은 새로 진입하는 사업자뿐 아니라 현재 면세점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에게도 소급해 적용된다.
TF는 관세청이 가진 신규 특허 발급 결정 권한은 민간 중심의 ‘면세점제도운영위원회’로 넘기도록 권고했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면세점 수를 늘리는 폐단을 막기 위한 조치다.
그 대신 새로운 면세점을 낼 수 있게 해주는 신규 특허 발급 요건을 완화했다. 지금은 △전년도 전체 시내면세점 이용자와 매출액에서 외국인 비율이 모두 50%를 넘고 △광역지방자치단체별로 외국인 관광객이 30만 명 이상 증가하면 관세청장이 신규 특허를 낼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개선안은 이 중 ‘외국인 50% 비율’ 기준을 없애는 대신 광역지자체별 시내면세점 매출액이 3년 연속 10% 이상 증가해야 한다는 기준을 넣었다. 면세점 이용자 수는 내국인이 외국인보다 많아 신규 특허를 내는 데 쉽지 않다는 지적을 감안한 것이다. 다만 신규 특허가 너무 많아지면 과당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허수수료에 대해서는 TF는 제도 개선을 권고하지 않았다. TF는 “현재 특허수수료 수준이 높다는 의견도 있고 정반대의 의견도 있어 적정 수수료 수준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선안에 대해 정재완 한남대 무역학과 교수는 “갱신제도를 열어둔 것은 긍정적이지만 갱신 횟수를 제한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장논리에 맡길 수 있는 부분을 정부가 개입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만신창이가 된 업계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 면세점업계의 매출은 전월 대비 31.4% 늘었다. 하지만 업계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보고 있다. 실제 국내 면세 사업자 1위인 롯데면세점의 올 1분기(1∼3월) 매출은 1조2696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49억 원으로 33% 감소했다. 롯데면세점 등은 경영난에 따른 임대료 부담으로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면세점에서 사업권을 반납하기도 했다. 올해 안에 신세계면세점 강남점과 현대백화점 면세점 무역센터점 등이 추가로 개장하면서 12개의 시내면세점의 ‘파이 나눠 먹기 식’ 경쟁에 내몰릴 판이다.
이는 불확실한 제도 때문에 기업이 장기적 안목으로 경영을 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까지만 해도 면세점 특허기간은 결격 사유가 없으면 10년마다 연장됐다. 그러나 2013년 독과점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국회와 정부는 5년마다 사업자를 재심사하도록 관세법을 고쳤다. 2015년 말 정부는 재심사를 통해 특허 만료를 앞둔 롯데 월드타워점과 SK워커힐점의 면세점 특허권을 박탈했다. 의외의 결정으로 2200여 명의 직원 중 상당수가 고용불안을 겪었다. 이런 홍역을 치른 뒤 박근혜 정부는 특허 기간을 다시 10년으로 늘리고 신규 면세점 특허 수도 늘리려 했다.
○ ‘면허 자동 갱신토록 해야 투자 가능’
면세업계는 “결과적으로 바뀐 것이 없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우선 면세사업 특허 갱신 기간을 연장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해외 시내 면세점들은 지속 가능한 사업 성장을 위해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으면 사업 허가를 자동 갱신한다”며 “특허 기간이 끝나면 다시 원점에서 사업 여부를 검토하는 한국에서는 미래를 내다본 적극적인 투자가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는 특허수수료를 고치지 않은 것도 아쉬워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롯데면세점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이 25억 원이었는데 특허수수료로 낸 금액만 2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는 과도하게 책정되고 있는 특허수수료 부과에 대해 확실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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