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가연구사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학생연구원 근로계약 의무화 제도’가 오히려 단기 계약만 양산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계약 의무화 제도는 대학에서 학위과정을 밟는 학생 중 연구 경험을 쌓기 위해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자발적으로 찾은 연수생에게 우선 적용된다. 현재 정부 출연 연구기관 19곳 중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을 제외한 18곳이 도입했다.
하지만 4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조사 결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학생 연수생은 올해 2월 말 기준 1053명으로, 제도를 도입하기 전인 지난해 6월(1302명)보다 오히려 20%가량 줄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경우 학생 연수생 중 53.2%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연구기관들이 근로계약 체결을 꺼리는 건 학생 인건비로 비용이 20∼30% 올라가서다. 올해 2월 개정된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연구책임자는 연구비 세목으로 4대 보험 부담금과 퇴직급여충당금 등을 포함한 학생 인건비를 일정 기준금액 이상 계상해 사용해야 한다. 한 연구기관의 석사과정 연구원 K 씨는 “연구비 사정이 좋지 않은 연구실은 역할이 큰 몇몇 학생들 위주로 근로계약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계약을 맺은 학생들도 계약기간이 대부분 1년에 그치고 있다. A기관의 연구책임자 L 선임연구원은 “연구과제는 보통 2∼5년 단위지만 근로계약을 맺으면 인건비 부담이 커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기관과 1년 근로계약을 맺은 박사과정 연구원 M 씨는 “이번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재계약은 없다는 기관의 지침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 제도에는 또 다른 맹점이 있다. 석·박사과정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으려면 근로계약을 맺기 힘들다. 취업 상태가 되면 장학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연구재단이 석·박사과정 학생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글로벌박사펠로우십(GPF)’의 경우 ‘전일제 학생 신분 유지’가 조건이다.
최근 C기관 연수를 그만둔 성균관대 박사과정 연구원 J 씨는 “장학금을 받으면 학업 우수성을 인정받는 것이기도 해 어쩔 수 없이 기관 연수를 포기했다”며 “기관에서 하던 프로젝트를 중단하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듯해 아쉽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근로계약을 맺어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부와 논의했지만 교육부는 ‘예외를 둘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학생 연구원을 근로자로 정의하는 것을 두고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며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학생 연구원에 맞는 새로운 근로자 개념이 필요하다. 산재보험 특례조항을 만들어 학생연구원들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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