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인 이모 씨(36)는 한 달에 약 350만 원을 번다. 서울에 7억 원 상당의 집이 있지만 은행 빚이 대부분이다. 노후 준비도 연금 외에는 딱히 없다. 그는 2015년 통계청 자료 기준(4인 가구 월 소득 194만∼580만 원)으로 ‘중산층’이다. 하지만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 씨는 “앞으로 두 살 난 딸아이에게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주변 사람들에 비해 가난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중산층 10명 중 약 6명은 이 씨처럼 스스로를 빈곤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교육비 등의 부담과 불안한 노후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29일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의 ‘2017 대한민국 중산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중산층 가운데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43.3%에 그쳤다. 나머지 56.5%는 빈곤층으로, 0.2%는 고소득층으로 인식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달 17∼21일 173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 대상은 통계청 기준에 따라 분류한 빈곤층 253명, 중산층 1205명, 고소득층 272명이었다.
중산층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기준과 현실의 괴리는 적잖은 차이를 보였다.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중산층은 순자산 1억8000만 원을 보유하고 월평균 366만 원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응답자들은 ‘순자산 6억4000만 원, 월평균 소득 511만 원’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중산층이 노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후 예상 월 소득이 얼마냐’는 질문에 중산층 37.5%가 “100만 원이 안 된다”고 대답했다. 2인 가구 기준으로 월 소득이 137만 원 이하면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중산층 중 노후 준비의 ‘3종 세트’인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모두 갖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46.5%에 그쳤다.
절반 이상의 중산층(55.5%)은 결혼이 ‘선택 사항’이라고 답했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응답한 중산층은 26.5%에 그쳤다. 18%는 “결혼이 필요 없다”고 답했다. “자녀가 외국인과 결혼해도 괜찮다”는 중산층도 58.3%에 달했다.
중산층의 60.2%는 “대통령 단임제를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41.3%는 “통일은 안 되는 것이 좋다”고 부정적인 답을 내놨다. 중산층 10명 중 약 8명은 한국이 10년 뒤 현재 경제적 위상을 유지하거나 후퇴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중산층은 하루 평균 6.4시간 잠을 자고 6200원짜리 점심을 먹고 저녁에 1.9시간의 여가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의 82%는 1년에 1회 이상 여행을 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에서 중산층의 61.5%는 대졸 이상의 학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빈곤층이 대학을 나온 비율(33.6%)의 2배에 가깝고, 고소득층(77.2%)보다는 15%포인트 이상 낮은 수치다.
이윤학 100세시대연구소 소장은 “현실과 이상의 벽 앞에서 많은 중산층이 스스로의 가치와 처지를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은퇴 후에도 중산층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연령과 소득수준에 맞는 맞춤형 노후 준비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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