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국적 해운사의 경영위기가 길어지면서 해운업계는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 전체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출 물량의 99.7%를 해운으로 운반하는 상황에서 물류 경쟁력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은 물론이고 조선과 항만 산업 등 관련 산업에까지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최근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 방향이 산업 구조 재편보다는 ‘빚 줄이기’에 무게중심이 쏠리면서 자칫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상황이 올지 우려하고 있다.
○ 부족한 점 보완하는 ‘맞춤형’ 지원 필요
해운업계는 ‘당장 빚을 줄이라’는 식으로 재무적 관점에 따라 이뤄지는 획일적인 구조조정 방식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결국 영업력을 갖춘 해운사가 법정관리로 가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때문에 그간 갖춰 놓은 영업망과 신뢰관계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지 않으려면 영업과 경영을 잘할 수 있는 회사를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다.
지금 ‘해운공룡’이 된 외국의 선사들은 이 같은 지원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결과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 해운사와 세계적 해운사 간의 적재능력과 영업이익률 차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 이후 정부의 대응이 차이를 갈랐다. 위기에 오히려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대형선박을 확보한 외국 선사들은 원가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고, 빚을 줄이기 위해 가지고 있던 배도 팔아버린 국내 선사들은 수익성이 점점 더 나빠졌다.
그런데 최근 정부와 채권단이 주도하는 해운 구조조정의 방향도 2009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기준에 따른 지원 방안이 대표적인 문제다.
현재 한진해운은 해운동맹 ‘THE 얼라이언스’를 주도할 정도로 영업력과 덩치에서 앞서지만 용선료를 연체할 정도로 자금이 부족한 상태이고, 반면 현대상선은 현대증권 매각에 성공해 자금력은 있지만 계속된 영업적자와 해운동맹 가입 지연으로 영업망에 타격을 입고 있다. 각각 필요로 하는 부분이 다르지만 채권단은 ‘부채비율 400% 이하’만 강조하며 추가 지원은 없다는 점만 내세우고 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옷(지원책)에 사람(해운사)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 반대가 돼야 할 것”이라며 “현대상선에 해운동맹 가입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 사격이 필요하고, 한진해운에는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검찰 조사로 손발이 묶인 KDB산업은행의 상황이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검찰로부터 대우조선해양의 관리·감독 부실 책임에 대해 조사를 받게 되면서 해운업계 지원에도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해운사는 자체적인 경쟁력 확보 방안 고민해야
해운사 역시 자체 경쟁력 확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조정에 앞서 ‘지원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정부에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세계 해운시장에서 영업에 필수적인 해운동맹을 확보하고 용선료 협상과 자체적인 자구 노력에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상황은 긍정적이다. 용선료 협상을 마친 현대상선은 23일 “세계 최대의 해운동맹인 ‘2M’에 가입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최근 2M이 협력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고 설명했다. 2M으로서는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됐던 아시아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대상선의 가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THE 얼라이언스 결성을 주도한 한진해운은 용선료 협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직접 선주사 대표를 만나 논의하기도 했다.
한진해운은 해운업 불황 속에서도 주력 노선인 북미 노선에서 주요 화주들과 예년보다 11% 더 많은 물량에 대해 계약을 맺어 영업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진해운은 조 회장이 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선 2014년 4월 이후 분기 영업흑자로 전환한 뒤 2014년과 지난해 2년 연속으로 연간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조 회장이 경영에 본격 참여한 이후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에 1조 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운임이 낮아진 상황을 오랜 기간 견뎌야 하는데, 민간기업 자체적으로 버티기 힘든 구조가 됐다”며 “공공기관이 주주로 참여해 자본을 확충하고 민간이 주도적으로 경영해 효율성을 높이는 민관 합작 지배구조로 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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