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들이 내년에 쓰겠다고 요청한 예산 총액이 400조 원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예산보다 불과 3.0% 많은 것으로 역대 최저 수준의 증가율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인 내년에는 정부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는 ‘긴축 예산안’이 짜일 것으로 보인다. 늘어나는 나랏빚에 허리띠를 졸라맸다지만 기업 구조조정 국면에서 정부가 경기둔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10일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정부 부처들이 예산 당국인 기재부에 내년도 지출예산안으로 398조1000억 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올해 예산(386조4000억 원)보다 3.0% 늘어난 것으로, 현재의 총액배분자율편성제도(기재부가 정해준 한도 내에서 부처별로 자유롭게 예산을 편성하는 제도)가 도입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이날 발표된 각 부처의 예산 요구액은 발표 전에 기재부와 상의를 거치기 때문에 9월에 확정되는 정부예산안의 초안으로 볼 수 있다.
복지, 교육, 문화 등 7개 분야는 올해보다 예산을 더 쓰겠다고 요구했다. 기초생활보장 급여와 4대 공적연금 등 의무 지출이 늘어나고, 행복주택 등 주택 부문에 써야 할 돈이 늘어나면서 복지 예산 요구액은 5.3% 증가했다. 사병 월급 등 국방 예산 요구액도 올해 예산보다 5.3% 증가했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국고지원 요구 등으로 교육 분야도 3.1% 늘었다.
반면 산업, 사회간접자본(SOC) 등 5개 분야는 올해보다 예산을 줄여 달라고 요구했다. SOC는 도로·철도 건설 사업을 중심으로 15.4% 깎였다. 산업 분야 예산 요구액도 에너지 자원개발 투자 축소 등으로 5.5% 줄었다.
각 부처가 내년도 예산을 소극적으로 잡은 것은 올해 2월 국가부채가 600조 원을 돌파하는 등 재정 여건이 악화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재량지출 10% 구조조정 등 강도 높은 재정 개혁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마련된 재원을 일자리 확충, 미래 성장동력 등에 집중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구조조정으로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임기 말 ‘균형 재정’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긴축 재정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요구안에는 최근 본격화한 구조조정 등에 따른 환경 변화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이 나오면 이런 요소들을 고려해 최종 예산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의 진행 과정에서 경기침체가 깊어지는 등 상황이 급변하면 예산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복지 예산 등 반드시 써야 할 의무지출이 늘면서 SOC와 산업 지출 등 경기부양에 쓸 재원이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분석도 있다. 2015∼201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전체 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5년 46.0%에서 2019년 52.6%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재부는 정부 부처 요구안을 토대로 정부예산안을 편성해 9월 2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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