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피터팬 증후군’ 빠진 中企 경쟁력 살리기 ‘긴급처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2일 03시 00분


공공조달시장 대기업에 개방추진

정부가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제도를 시행 10년 만에 대대적으로 손질하기로 한 것은 그간 공공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는 퇴색되고 업체들의 경쟁력은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중견·대기업의 진입을 제한했지만 소수의 3, 4개 기업이 조달시장을 과점하는 양상이 고착화됐다. 조달시장에 참가한 중소기업이 해당 제품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직접생산확인제도’는 관리 부실로 위장납품 등 운영상 부작용이 계속돼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11일 기획재정부와 조달청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조달시장에서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 최소한 2개 이상의 업체가 참여하는 ‘다수공급자계약제도(MAS)’를 운영하고 있다. 최저가 낙찰을 통해 1개 업체만 선정하는 방식이 제품의 다양성을 떨어뜨리고 품질 저하를 가져온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문제는 시장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골고루 참여하기보다는 소수의 중소기업이 계약을 과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MAS 계약에서 상위 3개사 점유율이 30% 이상인 조달품목은 54.9%에 달한다. 70% 이상을 초과하는 품목도 26.2%에 이른다.

가구시장의 경우 상위 15% 업체가 전체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시장의 93%를 차지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전체 개인용컴퓨터(PC) 공공조달시장 납품 2840억 원 중 70%가량을 상위 3개사가 공급했다. 가격 및 품질경쟁이 없다 보니 제품의 질이 민간제품보다 크게 떨어져 관공서의 불만이 컸다.

일부 중소기업은 직접 생산한 제품만 납품해야 한다는 규정을 무시한 채 유명 글로벌 기업 및 중국산 제품을 수입하거나 대기업 제품을 싸게 구매한 뒤 조달시장에 공급하는 일도 빈발했다. 직접생산 확인 여부를 주무관청인 중소기업청이 아니라 위임, 재위임을 받은 품목별 조합들이 하다 보니 제대로 점검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조달품질원이 지난해 7월 직접생산 확인제도 실태를 점검한 결과 10곳 중 9곳이 제품을 실제 생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을 정도다.

이런 이유로 정부 내부에선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 제도를 전면 폐지하고 완전경쟁 체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중소기업의 판로가 부족한 현실을 반영해 현행 제도의 근간은 유지하되 중견·대기업의 참여를 늘려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중소기업 경쟁제품이더라도 금액별로 구분해 중견·대기업의 참여를 일부 허용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예컨대 입찰금액이 △1억 원 미만은 소기업만 참여 △1억 원 이상 2억 원 미만은 중기업까지 참여 △2억 원 이상은 중견·대기업까지 개방하는 식이다. 또 204개 품목 중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20개 이하인 경우에는 시장의 20%를 중견·대기업에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개선안이 ‘중소기업 보호와 육성’이란 정책 마지노선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당장 중소기업계에선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빌딩제어장치 A사 대표는 “조달시장은 민간시장에서처럼 최첨단이나 최고의 품질을 요구하는 시장이 아니다”라며 “중견·대기업의 등장으로 출혈경쟁이 벌어지면 중소기업이 퇴출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 피터팬 증후군

중견기업·대기업이 되면 각종 지원·혜택이 끊기기 때문에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중소기업으로 머물려는 현상. 원래 어른이 돼 책임지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몸은 어른이지만 아이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는 심리학 용어.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중소기업#경쟁제품#조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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