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강소국 오스트리아의 비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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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재 산업통상자원R&D전략기획단장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박희재 산업통상자원R&D전략기획단장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오스트리아는 작은 나라다. 대한민국보다 조금 작은 영토에 인구는 800만 명 정도 된다. 하지만 강한 나라다. 신성로마제국 시대 합스부르크 가문부터 모차르트, 클림트,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정치, 문화, 학문 유산을 쌓아 왔다. 경제적으로는 201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4000달러로 독일(4만2000달러)보다도 높다. 특히 ‘히든 챔피언’(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주창한 개념으로 세계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우량 강소기업을 말함)이 116개로 우리나라(23개)의 5배나 된다. 독일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의 히든 챔피언 보유 국가다.

지난달 오스트리아에 다녀왔다. 유엔 산하 국제기구인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에서 개발도상국의 연구개발(R&D) 정책 방향에 대한 강연을 하고 AVL, 가이스링거 등 현지 기업을 방문했다. 두 회사 모두 히든 챔피언이다. AVL은 자동차 파워트레인(동력 전달장치)을 만들고, 가이스링거는 선박용 댐퍼(진동 차단장치)에 특화된 업체다. 이들 기업을 방문하고 나서 알게 된 강소국 오스트리아의 비결을 요약해 본다.

첫째, 오스트리아 경제는 작은 기업이 이끌고 있다. 전체 기업의 99% 이상이 직원 250인 미만의 중소기업이다. 음료 회사인 레드불스, 유리 회사인 스와로브스키 등의 유명 회사 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오스트리아 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AVL은 연간 매출액이 1조 원에 이른다. 오스트리아는 허리가 탄탄해야 경제 전체가 건실하며 강소기업이 강소국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R&D에 대한 지속적이고 과감한 투자다. 두 기업 모두 매출액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하고 있다.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혁신의 원천인 R&D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핵심이 아닌 것만 아웃소싱하고, 핵심 분야는 철저히 내부에서 개발한다.

셋째, 기업마다 특화 영역을 정하고 그 영역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화 분야가 좁은 틈새시장이라 하더라도 세계로 눈을 돌리면 큰 시장이 된다. 두 기업 모두 제품의 거의 전부를 수출하고 있다. 기업별로 특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규모가 큰 AVL은 주력 분야인 파워트레인 이외에도 2차전지 등으로 다각화를 꾀하고 있는 반면, 규모가 작은 가이스링거는 댐퍼 한 가지만 아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넷째, 경영진은 직원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가장 큰 의무로 여긴다. 직원도 자신이 다니는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생각한다. 낮은 이직률은 지식과 경험의 축적에 유리하다. 또한 도제식 훈련을 통해서 기술 수준이 높은 신규 인력이 지속 유입된다.

다섯째, 창업자의 후손이 대를 이어 책임경영을 하고 있다. 회사를 처음 세울 때의 기업가 정신, 혁신적 발상, 그리고 회사를 지속적으로 키워 온 윤리적 기업 철학이 대물림된다.

우리와 오스트리아는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인구는 적고, 시장은 좁으며, 천연자원도 없다. 미국 중국 등 대국의 성장모델을 따라가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이 오스트리아처럼 혁신으로 뭉치고, 틈새를 집요하게 공략하고, 세계시장을 진취적으로 개척해 나간다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이끌어갈 히든 챔피언들이 속속 생겨날 것이라 믿는다.

 

박희재 산업통상자원 연구개발 전략기획 단장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오스트리아#이슈&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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