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가 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왜 이렇게 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7일 11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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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아시아의 경제 성장을 견인하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아시아의 평균 성장률을 갉아먹는 처지가 됐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고도 성장세를 달리던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을 일컫는다.

7일 블룸버그 통신은 작년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4개국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5%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성장률 6.1%를 크게 밑돌았다고 보도했다. 한국(2.6%), 대만(0.8%), 싱가포르(2.0%), 홍콩(2.4%)의 작년 성장률은 모두 3%에 못 미쳤다.

반면에 중국(6.9%), 베트남(6.7%), 인도(7.3%), 필리핀(5.8%), 말레이시아(5.0%) 등 신흥 국가들은 모두 5% 이상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올해도 상황이 밝지 않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망치를 보면 올해 한국의 성장률은 작년과 같은 2.6%, 싱가포르는 1.9%, 대만은 1.5%, 홍콩은 2.4%로 여전히 2%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캐피털 이코노믹스(CE)는 전날 ‘신흥 아시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아시아의 원조 호랑이인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이 앞으로 2년간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봤다. 신용 성장이 둔화하고 부동산 버블이 무너지며, 고령화 같은 구조적인 문제도 산적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 저금리 환경으로 늘어난 가계 대출이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CE는 한국과 싱가포르의 가계부채는 지난 5년간 빠르게 증가해 가계의 고통스러운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CE는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2005년 이후 매년 소득증가율을 웃돌고 있다며 위기를 막으려면 가계가 부채 축소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주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7.2%로 신흥 19개국 중 1위였다. 싱가포르의 가계부채 비율은 GDP의 60% 수준이다.

홍콩과 대만은 오랜 기간 저금리 환경으로 급등한 주택가격이 조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성장에 압박을 받고 있다.

홍콩의 주택가격은 2009년 이후 작년 9월까지 두 배 이상 올랐으며 9월 정점을 찍은 이후 현재까지 11%가량 하락했다.

CE는 미국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홍콩의 부동산 가격이 추가로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다며 부동산 가격 조정은 소비와 투자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역시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가능성이 위험 요인으로 지적됐다. 대만 부동산 가격은 작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CE는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은행 부문은 물론 소비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CE는 싱가포르에서는 민간부문의 은행대출이 빠르게 증가해 GDP의 130%를 넘어섰다며 앞으로 몇 년간 부채 축소 과정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직면한 점도 이들 4개국의 성장에는 걸림돌이다.

미국 통계국이 지난달 말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가장 빠르게 늙어갈 나라로 한국, 홍콩, 대만 등이 꼽혔다. 2050년 한국과 홍콩, 대만의 65세 이상 비중은 각각 35.9%(2위), 35.3%(3위), 34.9%(4위)로 모두 30%를 웃돌았다. 이들 국가의 노인 인구 비율은 작년에 모두 20%를 크게 밑돌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지난 5일 아시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아시아가 향후 몇 년간 전 세계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면서도 아시아 호랑이들(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은 예외라고 했다.

S&P는 아시아의 호랑이들은 앞으로 2년간 성장세가 거의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 이유로 세계 무역의 성장 부진과 중국의 역내 생산 증가를 꼽았다. 이들 국가는 모두 중국의 성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경착륙 우려는 완화됐으나 중국이 역내 생산을 늘리면서 수출 중심 경제구조를 지닌 이들 나라의 성장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전 세계적인 경기 둔화 추세로 무역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는 점도 이들 국가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S&P의 설명이다.

S&P는 특히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이들 국가의 재정정책이 성장을 뒷받침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진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대만과 한국은 금리 인하 등을 통해 성장을 촉진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CE는 미국의 금리 인상은 아시아의 금리 인상을 촉발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과 대만은 올해 한차례 금리를 추가로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자국 통화를 미 달러화에 고정한 싱가포르와 홍콩은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서면 유사한 통화정책 기조를 띨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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