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모처럼 낭보가 날아들었다. 저유가로 석유화학 플랜트 수주가 급감한 중동 건설 시장에서 ‘한국식 신도시’ 수출이 개가를 올린 것이다. 대우건설과 한화건설이 건설업계의 고질병인 해외시장의 출혈 수주 경쟁에서 벗어나 협력을 택한 것도 눈길을 끈다. 수도권 1·2기 신도시, 세종시, 혁신도시 등 한국 건설사들의 풍부한 개발 경험과 한류 바람을 결합한 도시 개발이 저유가 시대에 한국 건설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출혈 경쟁 아닌 협업으로 따낸 쾌거
24일 대우건설과 한화건설에 따르면 두 회사가 시공사로 참여하려고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다히야트 알푸르산’ 신도시 사업은 현지에 향후 10년간 아파트, 타운하우스, 빌라 등 총 10만 채의 집과 신도시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사업비만 최대 200억 달러(약 23조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본계약이 이루어지면 역대 최대 규모의 해외 건설사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단계이지만 사우디 측이 직접 사업 참여를 요청해 본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즉위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이 심각한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내세운 핵심 공약사업이기 때문이다. 24일 서울에서 열린 MOU 체결식에도 마제드 알호가일 사우디 주택부 장관이 직접 참석해 강력한 사업 추진 의지를 밝혔다. 사우디 정부가 올해 1월 향후 7년간 약 4000억 달러(약 464조 원)를 투자해 주택 150만 채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추가 수주까지 기대된다.
이번 MOU 체결은 궁지에 몰릴 때마다 돌파구를 찾아냈던 한국 건설사들의 도전과 집념의 산물이자 출혈경쟁이 아닌 공동협력의 모범사례로 평가된다. 대우건설은 2011년부터 사우디 주택개발사업을 타진하는 등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사우디 제2도시인 제다에 7200채 규모의 주택사업을 따냈다가 발주처 사정으로 사업이 무산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주택사업의 문을 두드렸다. 그 사이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 한국형 신도시인 스타레이크시티를 조성하는 등 노하우도 쌓았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말 사우디 정부에서 “10만 채 신도시 조성계획의 제안서를 보내 달라”는 연락이 오자 한화건설에 공동사업을 제안했다. 한화건설이 10만 채 규모의 비스마야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자는 것이었다. 한국 신도시처럼 10만 채를 한꺼번에 짓고 공공기관, 기업, 상업·주거시설이 결합된 자족형 신도시를 조성하겠다는 제안은 주효했다.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은 “사우디의 추가 신도시 개발공사 수주뿐 아니라 인근 중동 국가와 북아프리카 신도시 수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광호 한화건설 사장도 “해외 신도시 개발 분야에서 선도적 입지를 다지고 중동, 동남아시아 등의 잠재시장을 지속적으로 개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사업”…돌파구
이번 MOU 체결은 저유가로 중동의 플랜트 공사 발주가 급감한 가운데 한국이 강점을 가진 새로운 영역을 발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국내 건설사의 해외 수주 금액은 2014년보다 30% 줄어든 461억 달러에 그쳤다. 도시개발 사업은 중동, 동남아시아, 남미 등 개발도상국에서 점차 수요가 늘고 있어 수주 전망도 높은 것으로 기대된다. 유엔에 따르면 아시아, 아프리카 등을 중심으로 2050년까지 세계 도시인구는 29억 명 이상 증가하고, 향후 20년간 매년 250개 도시가 새로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엔지니어링 사업에 국한되는 플랜트와 달리 도시개발사업은 다양한 산업이 결합돼 수출 유발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 김원종 해외도시개발지원센터 차장은 “주택 건설뿐 아니라 가전, 인테리어, 교통시스템, 정보통신기술(ICT), 환경산업 등이 함께 동반 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도시개발 분야에서 선진국을 넘어선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1990년대 경기 성남시 분당, 고양시 일산 등 1기 신도시, 2000년대 경기 성남시 판교, 화성시 동탄 등 2기 신도시, 세종시, 혁신도시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면서 노하우를 갈고닦았다. 계획부터 입주까지 10년 안에 빨리 지을 수 있다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정부도 해외도시개발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보고 ‘정부+공기업+민간’ 동반 진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김재정 국토부 건설정책국장은 “도시개발은 마스터플랜 수립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성과를 볼 수 있다”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수출입은행, 건설업체, 엔지니어링업체가 협력해 수주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