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조합, 입찰업체 정해놓고… 年150억∼250억 수수료 장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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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조달시장 전면감사]

《 무대장치 전문 중소기업인 ‘S’사는 지난해 말 수도권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한 문화예술회관 음향반사판 교체공사 입찰에 참여하려 했다가 포기했다. 공개경쟁 입찰이 아니라 일정 기준을 갖춘 기업만 참여하는 ‘지명경쟁 입찰대상’으로 지정된 공사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업 입찰에는 관련 중소기업협동조합(이하 중기조합)이 추천한 기업들만 참여했다. 문제는 추천받은 업체들이 모두 이 중기조합의 주요 간부들이 대표로 재직 중인 곳들이라는 점이다. 공사를 따낸 회사 대표는 이 중기조합의 상임고문이었고 나머지 업체 대표들도 조합 감사나 지역 상임고문, 분과위원장 등을 맡고 있었다. 》

○ 그들만의 리그 ‘지명경쟁 입찰’


7일 조달청과 중소기업청 등에 따르면 무대장치, 빌딩자동제어장치 등 204개 품목은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돼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입찰금액 규모에 상관없이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해야 한다. 다만 공동상표를 활용한 사업이거나 공동으로 특허권을 보유한 기술이 필요한 사업이라면 관련 중기조합이 추천한 기업들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이른바 지명경쟁 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다.

지명경쟁 입찰 사업에서 추천업체에 포함되면 입찰 경쟁률이 크게 낮아지고 공사를 따낼 확률은 높아진다. 그래서 중기조합의 추천을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추천업체들이 대부분 중기조합 간부들이 재직 중인 회사들로 꾸려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지명경쟁 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사업들은 거의 대부분 추천받은 업체들끼리 나눠 먹기를 한다는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예컨대 A에서 E까지 5개 기업이 참여한 입찰에서 A기업이 낙찰받을 수 있도록 D, E 등 2개 기업은 터무니없는 가격을 써내 입찰에서 배제되고 B, C 등 2개 기업은 A보다 조금 비싼 가격을 써내는 식이다. 이렇게 신뢰를 쌓은 업체들은 다음번 입찰에서 B기업이 낙찰을 받도록 A와 E가 입찰에서 배제되고 C와 D가 조금 비싼 가격을 써내 공사를 따내는 방식으로 사업권을 ‘그들만의 리그’로 만든다. 기계 관련 중기조합에 속해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기술을 갖추고 경영상태가 좋은 기업이라도 대표가 중기조합 간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중기조합이 지명경쟁 입찰이나 수의계약 공사에 참여할 업체를 선정해주면서 수수료 장사를 한다는 의혹도 나온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사를 수주한 업체는 해당 중기조합에 통상 계약금액의 3∼5%를 수수료로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명경쟁 입찰이나 수의계약을 통한 조달사업이 연간 5000억 원대이므로 중기조합이 거둬들이는 수수료는 150억∼25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빌딩자동제어 관련사업 중기조합의 한 관계자는 “2006년 단체수의계약제도가 폐지된 이후 중기조합이 거둘 수 있는 주요 수입원 중 하나가 지명경쟁 입찰을 통해 받는 수수료”라고 귀띔했다.

○ 부실 검증 판치는 ‘직접생산 확인제도’

지명경쟁 입찰업체로 추천받은 기업 중에는 실력이 기준치를 밑도는 곳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 공개경쟁 입찰에서도 자격 미달 업체들이 낙찰받는 사례가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 값싼 중국산이나 해외 유명업체 제품을 수입해 와 국산으로 둔갑시키는 업체가 선정되는가 하면, 대기업 관련사 제품이 중기조합이 지정하는 우수제품으로 선정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은 ‘직접생산 확인제도’의 부실한 운영에서 비롯됐다.

직접생산 확인제도는 공공조달 입찰에 참가하는 중소기업이 해당 제품을 생산할 능력을 갖췄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입됐다. 정부는 직접생산 확인 업무를 중소기업중앙회에 맡겼지만 중기중앙회는 이를 다시 각 품목의 중기조합들에 위임한 상태다.

문제는 확인 업무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중기조합 관계자들은 현장실사는 하지도 않고 승인서류에 사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현장에 나가지 않고 전화로 확인하는 일도 적잖다.

일단 중기조합이 직접생산확인서를 발급하면 이후 입찰 과정에선 해당 기업이 실제 기술력을 갖췄는지 확인할 방법은 거의 없다. 정부는 올해부터 직접생산확인서를 발급받은 기업들 가운데 연간 1000곳 정도를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각 중기조합이 매년 발급하는 직접생산확인서만 평균 2만여 건에 달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공공조달 입찰 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 조사는 개별 사안별로 이뤄졌고, 대책은 대부분 땜질식이었다”며 “감사원의 전면감사를 계기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조달시장#전면감사#중기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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