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최종현 회장, 시험통화하며 “잘 들려요” 감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3일 03시 00분


[광복 70년/한국 기업史 명장면 10]<3>SK, 1996년 CDMA 상용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1996년 세계 최초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 서비스를 성공한 후 최종현 선경그룹(현 SK그룹) 회장(앞줄 왼쪽에서 3번째)이 관계자들을 모두 초청해 사은회를 열었다. SK그룹 제공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1996년 세계 최초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 서비스를 성공한 후 최종현 선경그룹(현 SK그룹) 회장(앞줄 왼쪽에서 3번째)이 관계자들을 모두 초청해 사은회를 열었다. SK그룹 제공
1995년 12월 31일, 경인고속도로 인천 톨게이트 부근. 손길승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부회장이 승합차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모기업인 선경그룹(현 SK그룹)의 최종현 회장(작고)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아주 잘 들리네요. 끊어지지도 않고.” 당시 전화기에서 들리는 최 회장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고 한다.

승합차에 동승한 한국이동통신 임원진도 번갈아 가며 시험 통화를 했다. 인천 주안역까지 가는 약 30분 동안 통화는 한번도 끊어지지 않았다. 임원들의 얼굴도 점차 상기됐다. 세계 최초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1987년 10월 한국이동통신이 국내에서 최초로 시작한 아날로그 이동통신 방식은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가입자 증가로 인해 서비스에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대도시에선 통화 품질이 나빴고 통화도 자주 끊어졌다. 디지털 방식으로 옮겨가야 할 때였다.

문제는 여러 디지털 방식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였다. 1990년대 당시 유럽통화방식(GSM)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고 CDMA 방식은 후발 주자인 상태였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아직 CDMA 방식을 상용화한 곳이 없었다.

한국이동통신은 CDMA 방식에 승부수를 띄우기로 했다. GSM 방식은 아날로그보다 2, 3배 더 많이 접속할 수 있지만 CDMA는 10배 이상 접속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다만 기술을 제대로 구현하는 게 매우 힘들다는 위험 부담이 있었다.

한국이동통신이 CDMA 개발로 방향을 잡기 시작했을 무렵인 1994년 선경그룹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 “점령군이 몰려올 것”이란 소문이 나돌면서 한국이동통신 내부는 술렁였다.

하지만 최 회장은 손길승 부회장 등 3명을 한국이동통신 간부로 보냈을 뿐 모든 현직 임직원을 유임시켰다. 또 선경그룹 임원회의에서 “한국이동통신 직원들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가능한 한 기존 조직을 흔들지 말고 그대로 가져가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 덕분에 한국이동통신은 CDMA 상용화를 위한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1994년 4월의 일이다. 손 부회장은 CDMA 개발 사업관리단이 입주해 있던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으로 찾아와 직원들을 격려한 뒤 기술개발자금으로 100억 원을 지원했다. 간접적으로 최 회장의 열의를 전달한 것이다. “아날로그 이동통신 시스템에 대한 기술 기반도 없는 한국이 CDMA 방식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모두가 말했지만 최 회장은 한국이동통신의 결정을 믿고 지원했다.

결국 한국이동통신은 1995년 여름 CDMA 방식의 기술 구현에 성공했다. 이듬해 1월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성공’이란 보도자료도 내놨다. 어느새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는 한국을 CDMA 기술 선진국으로 간주했다.

SK그룹 측은 62년 역사 중 최고의 명장면으로 1996년 CDMA 상용화를 꼽으며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어가는 모험이었다. 20년 전 이미 창조경제에 도전한 셈”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초로 CDMA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통신 장비 및 단말기 수출은 날개를 달았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최종현#sk#cd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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