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경기 화성시의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 풍동시험장에서 연구원들이 현대차의 벨로스터에 흰색 연기를 뿌려 공기 저항을 테스트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테스트 결과를 자동차 디자인에 반영한다.
지난달 20일 경기 화성시의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 풍동시험장. 축구장 크기의 시험장에 아파트 3층 높이로 서있는 커다란 팬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은 현대차의 벨로스터에 연기 발생기(smoke generator)를 갖다댔다. 자동차 표면을 따라 직선 모양으로 흐르던 흰색 연기는 사이드미러를 지나면서 꼬불꼬불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정호 공력개발팀 파트장은 “연기가 휘어지면 그만큼 바람의 저항을 많이 받아 연료 소모가 많아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풍동시험장의 연구원들은 신차 출시 전에 바랑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로 차량을 변형시켜 테스트를 반복한다. 디자인팀은 이런 실험 결과를 토대로 신차를 디자인한다.
현대·기아차가 최근 2020년까지 연비를 25% 개선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남양연구소에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 10년간 현대·기아차의 평균연비가 20%가량 개선된 점을 고려하면 5년 안에 25%를 향상시킨다는 것은 쉬운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자동차 남양연구소의 김광연 연비개발실 팀장이 자동차 앞쪽에 설치한 풍향풍속계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 제공현대·기아차 측은 자사의 연비 기술력이 다른 제조업체보다 크게 뒤떨어진다는 지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김광연 남양연구소 연비개발실 팀장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현대·기아차의 파워트레인(엔진과 변속기) 기술력은 수치로 환산하면 최대 2% 남짓한 차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연비 실력을 동등한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업체마다 주력 모델이 다른 데다 국가별로 연비를 측정하는 기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환경보호청(EPA)이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는 27.3갤런당마일(mpg)로 4위, 기아차는 7위(25.7mpg)를 차지했다. 업체 평균은 24.2mpg 수준이다. 하지만 유럽 환경 분야의 비정부기구(NGO)인 T&E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의 연비는 세계 8위 정도다.
현대·기아차의 연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인식은 국내 소비자들이 동급 모델이 아니라 같은 가격대의 모델을 비교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령 소비자들은 3000만 원대 초반이면 살 수 있는 폴크스바겐의 디젤 소형차인 골프의 연비(18.9km/L)와 가솔린엔진을 단 현대차의 쏘나타(12.1km/L)를 비교한다. 골프를 살 돈이면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 쏘나타가 왜 연비는 더 나쁘냐는 것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수입차의 일부 차종만을 조사하거나 수입업체가 자체 조사해 제시한 연비를 그대로 받아들여 수입차의 연비가 국산 차량보다 다소 유리하게 표기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연비에 관해 불공평하게 평가받고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연비 문제와 관련해서는 “실력으로 승부하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연비를 개선하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남양연구소의 연비개발팀 연구원 76명은 주말을 접고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가장 취약점으로 꼽히는 대형차 부문에서는 2016년에 연비가 L당 최소 15km가 넘는 제네시스 디젤을 출시해 우려를 불식한다는 전략이다. 경량화를 위해 철강의 사용을 줄이고 알루미늄 소재 사용도 늘릴 계획이다.
김 팀장은 “이제는 특정 부분에서의 개선만으로는 획기적으로 연비를 높일 수 없다”며 “파워트레인부터 차체 경량화, 공기와 타이어 저항 감소까지 모든 부분에서 단 1%씩이라도 쥐어짜내서 연비를 높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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