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증시에서도 ‘왕서방 자본’ 경계령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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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머니의 ‘한국工程’ 가속

차이나머니 주의보
“신탁상품은 최소 가입금액이 적게는 1000만 원, 많게는 1억 원도 넘어요. 그런데도 뭉칫돈을 서슴없이 맡기는 고객이 끊이지 않습니다.” 한 증권사의 프라이빗뱅커(PB)는 “최근 한국은행의 금리인하로 위안화 예금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며 “고액자산가들의 문의가 하루 10여 건이 된다”고 말했다.

위안화 예금은 국내에 진출한 중국계 은행들이 판매한다. 주로 국내 증권사들이 위안화 예금에 가입한 뒤 이를 기초로 어음을 발행하는데 금리가 연 3%를 넘어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국내 거주자의 위안화 예금 가입금액은 지난달 말 현재 162억 달러로 2012년 말(1억7000만 달러) 이후 약 1년 반 만에 100배로 폭증했다. 저금리에 투자처를 잃은 국내 부동자금을 중국계 은행들이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중국 금융의 한국 진출이 예사롭지 않다. ‘차이나 머니’가 국내 기업이나 부동산 투자를 늘리는 것은 물론, 이제는 금융회사들이 직접 국내시장을 노크하면서 토종 은행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금융시장의 중국 의존도가 커지면 그만큼 충격이 발생했을 때 한국경제가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도 커진다는 점에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 국내로 보폭 넓히는 중국 금융사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에 진출한 5개 중국계 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은 1억5000만 달러(약 1530억 원)에 육박한다. 외국계 은행은 보통 자국과 무역관계가 있는 기업들을 상대로 주로 영업을 한다. 하지만 요즘 중국계 은행들은 양국의 금리차나 위안화 투자 수요에 맞춰 국내 금융시장에서 다양한 사업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 궁상(工商)은행은 올해 말부터 일반 개인투자자들도 손쉽게 예금에 들 수 있도록 인터넷뱅킹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외국계 은행으로서 고객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벽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한 중국계 은행 관계자는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인들의 위안화 관련 상품에 대한 투자 문의가 부쩍 늘었다”며 “국내 거주 중국인이나 조선족 외에 한국인을 겨냥해 비즈니스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국내 결제 시장에서 중국 금융사의 영향력도 커지는 추세다.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전자결제 회사인 ‘알리페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400여 개 사업자와 협력해 온라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알리페이는 조만간 하나은행 등과 손을 잡고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국내 오프라인 가맹점에서도 간편결제를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중국 고객이 한국에서 물건을 사고 알리페이로 결제하면 하나은행이 가맹점에 대금을 지급하고 이를 알리페이로부터 받는 구조다. 알리페이의 국내 진출이 현실화되면 은련카드와 제휴해 중국 관광객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아온 국내 카드사들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아직 중국인의 결제 서비스가 국내 카드사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면서도 “그러나 카카오톡의 전자송금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중국 IT기업의 결제 서비스도 언제든 국내 금융사에 위협이 될 수 있어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절대적


국내 금융시장에 유입되는 중국계 자금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중국계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 7월까지 한국 주식을 1조8850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외국인 전체 순매수 6조3730억 원 가운데 약 30%를 중국계가 차지한 것이다. 채권시장에서도 중국 자본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 국내 상장채권에 대한 중국 투자자금 규모는 2008년 800억 원에서 지난달 말 13조2590억 원으로 급증했다.

‘차이나머니’가 대거 국내로 들어오면서 국내 주가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도 높아지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2002년 1월∼2008년 6월)에는 중국 주가가 1% 변화할 때 한국 주가 변화 폭은 0.11%에 불과했지만 2010년 7월부터 올 3월까지 변화 폭은 0.25%로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실제로 21일 중국이 부진한 제조업 경기 지표를 발표하자 국내 증시에서 철강 화학 기계 조선 관련주들이 크게 떨어지며 코스피가 1.38% 급락했다. 이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조기 인상 우려도 나왔지만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였다.

중국 기업의 국내기업 지분 투자가 늘면서 한국에 대한 중국의 직접투자도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중국의 대한(對韓) 투자액은 7억7600만 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394%나 늘면서 지난 한 해 전체 투자액(4억8000만 달러)을 훌쩍 넘어섰다.

“美연준보다 中변수가 더 큰 영향력” ▼

중국 정보기술(IT)업체인 텐센트가 2012년 카카오, 올해 CJ E&M의 지분을 차례로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영난에 빠진 동부그룹 계열사나 팬택도 중국 자본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중국 자본의 공습은 위기이자 기회”

중국 금융의 국내 영향력 증대로 한국 경제에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오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일단 향후 중국 경제에 충격이 생겼을 때 중국 투자자들이 한국에 투자했던 자금을 급격히 빼내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출렁거리는 등 변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금리로 갈 곳을 잃은 국내 투자자들의 새로운 투자 기회가 생기고 침체에 빠진 국내 자산시장이 차이나머니로 인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앞으로 한국에 유입되는 중국 자본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아 중국 경제지표 변화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임병익 금융투자협회 조사연구실장은 “중국 자본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자연스레 해외 투자가 늘어나는 것”이라며 “그래도 중국계 자금이 유럽 헤지펀드보다는 더 안정적인 자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송충현 balgun@donga.com·신민기·김재영 기자
#은행#증시#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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