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기업은 부자, 개인은 가난’한 상황… 근본적 해법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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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곳간’ 적극 열도록 규제 확 풀어야… 최경환 경제팀 핵심과제로 떠올라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국회 청문회에서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 부총리는 17일 경기 성남시 인력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해 “경기 선순환 차원에서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내유보금을 많이 쌓은 기업에 징벌적 과세를 하기보다는 임금을 올려주거나 투자, 배당을 확대한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세제 혜택을 통한 임금, 배당 확대 정책도 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규제 완화를 통해 서비스업을 육성함으로써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도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지적이 많다.

○ 사방이 꽉 막힌 한국 경제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가계소득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 따르면 국민총소득(GNI)에서 가계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 61.6%로 1995년(70.6%)에 비해 9.0%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하락폭인 4.1%포인트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반면 GNI에서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5년 16.6%에서 2011년 24.1%로 7.5%포인트 상승해 OECD 평균 상승폭(2.0%포인트)을 크게 웃돌았다. 기업의 부는 늘어나는데 가계의 소득은 이를 쫓아가지 못하는 현상이 점점 뚜렷해진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원인은 한국 경제가 제조업 위주로 돼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임금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임금이 증가해도 기업 이익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임금 인상을 통해 기업의 돈이 가계로 흘러가게 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또 가계부문으로 분류되는 소규모 자영업의 침체를 경제 정책만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대기업들이 중소영세상인들의 영역까지 침범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이명박 정부부터 동반성장정책이 추진됐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투자가 이뤄져도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근로자 1인당 생산성이 향상되고 로봇이 생산을 대신하는 이른바 ‘로봇소싱’이 일반화되면서 투자가 곧 고용이라는 공식은 깨져버렸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해외에서 생산기지를 짓는 국내 대기업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 배당 늘려도 국내 소액투자자 몫은 적어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을 배당으로 돌리면 국내 개인투자자의 소득이 늘어 내수경기가 진작될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도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이른바 ‘개미’를 의미하는 국내 소액 투자자의 지분이 외국인 지분에 비해 크게 낮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6일 기준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의 평균 외국인 지분은 44.7%에 이른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50.9%)를 비롯해 네이버(55.7%) 포스코(53.3%) 신한금융지주(65.7%) 등은 외국인 지분이 50%가 넘는다. SK하이닉스(49.2%) 현대모비스(48.2%) 현대자동차(44.8%)의 외국인 지분도 50%에 육박한다. 시가총액 상위 20대 기업으로 조사 대상을 확대해도 평균 외국인 지분은 41.3%다. 반면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 국내 소액 투자자들의 평균 지분은 지난해 말 기준 14.1%(자료 미공개한 현대모비스 제외)에 불과하다.

결국 국내 주요 기업이 배당을 늘리더라도 자산 증식 효과를 크게 누리는 이들은 외국인이라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배당을 늘리면 ‘국부 유출’이 될 수 있다는 논란을 일단 접어두더라도 소액 투자자들의 소득이 늘어 경기가 활성화되는 논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급 서비스 분야 투자 늘려야 가계 富 커져” ▼

○ “기본을 힘 있게 추진해야”

전문가들은 결국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투자로 전환시켜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면서 부의 분배를 유도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보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거의 유일한 출구는 과감한 규제 혁파를 통한 서비스업과 제조업의 병행 발전이라는 것이다.

국내 서비스 분야는 고용의 70%를 차지하지만 저부가가치의 도소매 음식숙박업에 몰려 있다. 1인당 생산성이 제조업의 45% 수준이다. 수출 제조업 중심의 대기업이 돈을 벌어도 자영업자와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주머니는 가벼워진다.

대통령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유병규 자문위원은 “규제를 혁파해 의료와 관광 등의 서비스 분야로 투자를 늘려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가계부문의 부를 늘리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조업에 대한 지속적인 성장 정책도 필요하다. 특히 최근 미국의 제조업체들이 다시 본국으로 유턴하는 현상을 세심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 자문위원은 “미국 제조업체들이 돌아오는 것은 자국의 우수한 연구개발(R&D) 인력과 첨단 부품소재 업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부총리가 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경기회복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도 좋지만 기존 정책들을 잘 조합해 힘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한양대 이영 교수(경제학)는 “힘 있는 경제부총리가 나서서 갈등이 무서워 규제에 손을 대지 않고 영역 싸움만 하는 부처 간 이기주의를 타파하고, 규제 개혁의 발목을 잡는 이익집단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세종=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
#최경환 경제부총리#한국 경제#기업 규제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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